김대중의 세계관ㆍ역사의식ㆍ사상철학
지금 여기, 우리에게 남긴 절절한 말들
한일 관계와 외교
“한국의 일부 인사 중에는 현 정세하 한일 관계 개선이 요청되는 면에만 관심한 나머지 덮어놓고 양국 친선만을 운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극히 위험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남에게 교만을 부릴 하등의 필요도 심사(心思)도 없으나, 한편 남으로부터 받아야 할 당연한 예절을 포기함으로써 민족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한일 간의 금후 천 년 국교의 기본적 출발점이 됨에서랴!”(수록지 미상의 기고문, 1953. 10. 3.)
이 책에 첫 번째로 수록된 김대중의 말은 1953년 10월 3일에 쓴 수록지 미상의 기고문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이 발언은 70년 후인 현 정부의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을 질책하는 듯하다.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안타까움은 차치하더라도 “민족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게 하며, 그가 말한 “금후 천 년 국교의 기본적 출발점”은 언제쯤 만들어질는지 안타까움이 더해 간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국익뿐입니다. 이익이 맞으면 협력하고, 안 맞으면 따지고 대립하는 것입니다. 친미니 반미니, 친일이니 반일이니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 1982.)
한편 김대중은 1982년 청주교도소 복역 중에 가족에게 보낸 옥중 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냉전시대였던 당시로서는 외교에 관한 파격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겠으며, 이 또한 현 세계정세에 임하는 대한민국 외교의 첫 번째 자세라 할 수 있겠다.
역사의식
“해방 후 일제하에서 싸운 공산주의자들을 오늘의 공산주의자와 같이 매도하고 그들이 바친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를 무시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이것은 주로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이 나라 국권(國權)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 1982.)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에는 이런 말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와 오버랩된다.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이 나라 국권(國權)을 장악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언론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 중의 자유입니다. 언론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가 없고, 언론 자유 있는 독재정치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이 유신 치하의 법정에서, 그리고 감옥에서나 거리에서 얼마나 목마르게 언론 자유를 부르짖으며 찾았던 것입니까?”(관훈클럽 연설 「80년대의 좌표-자유, 정의, 통일의 구현을 위하여」, 1980. 4. 25.)
“언론 자유 있는 독재정치를 상상할 수가 없”다는 김대중의 말은, ‘바이든 vs 날리면’ 논란에 이어 공영방송 사장과 방송통신위원장의 교체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정치적 신념
“그들이 나에게 어떤 짓을 한다 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내 충성, 우리들 자손에 대한 내 책임감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나는 이미 그 결의를 바꿀 수 없는 인간입니다. 1971년, 내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그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지지해 준 유권자의 46%, 540만 명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바치는 외에 그것을 회피할 자유가 없어요.”(3·1민주구국선언 사건 항소심 9차 공판에서의 최후진술, 1976. 12. 20.)
김대중은 다섯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끝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가 박정희 정권에 맞서 ‘3ㆍ1민주구국선언’을 하고 투옥된 후 법정에서 한 이 말은, 정치인으로서 유권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굳은 신념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 계신 피고들에게 부탁드린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내란음모 사건’으로 열린 군사재판 상고심에서의 최후진술, 1980. 11. 9.)
한편, 김대중은 1980년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을 받게 되어 최후진술을 할 때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이 된 직후 당선인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합의하여 전두환을 사면해 주었는데, 이로써 참된 용서와 화해, 국민 통합의 정치를 보여 주기도 했다.
오늘의 정치인이라면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 성장이 있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청주교도소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 1982. 9. 23.)
김대중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많은 금언을 남기기도 했다.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에 쓴 이 말은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또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각종 부조리, 사회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뿐이다.
그는 또한 많은 명언을 남겨 오늘의 정치인들을 일깨우고 있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공론이다.”(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 1982.)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서생적(書生的) 문제 의식을 갖는 순수성과 더불어 상인적(商人的) 현실 감각을 갖는 실체적인 자세의 두 가지가 하나로 조화되어야 한다.”(「김대중 ‘나의 고백’」, 『사목』, 1990. 11.)
“정당을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계보를 옮겨 다니는 정치인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한번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경솔하게 바꾸거나 변덕스럽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가볍고 추해 보입니다.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소소한 이해관계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는 사람은 결코 조직이나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3. 12. 17.)
“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짝만 앞에 서서 이끌어야 합니다. 절대로 반 발짝 이상 벌어져서는 안 되고, 어떤
경우라도 국민과 잡은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국민의 손바닥으로부터 전해지는 체온과 국민 정서를 통해 국민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3. 12. 17.)
우리 모두를 위한 말
“국민이 잘나야 합니다. 국민이 현명해야 합니다. 국민이 무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민족 정통성, 민주 정통성, 정의 사회, 양심 사회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3. 12. 17.)
“우리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사회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 ‘정부가 무엇을 하느냐?’, ‘정부가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어떠한 정책을 가지고, 어떠한 음모를 가지고 우리에게 임하고 있느냐?’ 이것을 항상 감시하고, 옳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반항하고 싸우는 ‘행동하는 양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YWCA 초청 수요강좌 강연 「민족혼」, 서울, 1980. 3. 26.)
“사랑하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려면 상대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처지와 심정을 알기 위한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화도 이해도 없는 가운데, 곡해와 무지가 쌓여 있는 가운데는 용서도 사랑도 있기 어렵습니다.”(청주교도소에서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 서신, 1982. 2. 23.)
그는 국민을 향하여 수없이 반복하여 외쳤다. 국민이 잘나야 하고, 현명해야 하고, 무서워야 한다고. 그래야만 “민족 정통성, 민주 정통성, 정의 사회, 양심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부를 항상 감시하고, 옳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반항하고 싸워야 한다고 했으며, 그런 ‘행동하는 양심인’이 되자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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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 대통령선거에서 세 번 낙선하고 네 번째 당선되어 대한민국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불굴의 정치인,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6ㆍ15공동선언을 이끌어내고 노동자ㆍ농민ㆍ빈민ㆍ여성 등 우리 사회 약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싸워 온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인권ㆍ평화 운동가, 1970년대에 대중경제체제를 주장하고 대통령이 된 후 IMF 위기를 1년 반 만에 극복한 경제 전문가, 지구상 모든 존재의 공동 생존과 번영을 외친 환경운동가.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수식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50여 년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역정 속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어떤 말로 표현했는지, 이 책 『김대중의 말』은 오롯이 보여 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이룩한 민주, 인권, 평화가 앞으로 후퇴하지 않고 더욱 발전해 나가길 원한다면,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 생업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교육자, 문화예술인, 시민운동가 등 모든 민주시민들은 이 책을 읽고 새겨야 한다. 『김대중의 말』은 우리 시대 모두를 위한 금언집이다.
다큐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추진하고
각종 김대중 대통령 추모사업을 벌여 온
정진백 김대중추모사업회장의 결실
이 책의 엮은이 정진백 김대중추모사업회 회장은 10여 년 전부터 ‘김대중 대통령 다큐영화’ 제작을 추진해 왔고,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24년 1월, 드디어 〈길위에 김대중〉이라는 기념영화가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정진백 회장은 1971년 4월 고등학생 시절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후보 연설회’에서 김대중의 연설을 처음 들은 이래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을 그 누구보다 흠모해 왔다. 그는 김대중에 관한 한 뛰어난 전문가로, 그동안 『김대중 대화록』(전5권)과 『김대중 연대기』(전6권)를 펴낸 이력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가 엮어 선보이는 『김대중의 말』에는 김대중의 세계관ㆍ역사의식ㆍ사상철학의 진수가 담겨 있다. 또한 위대한 역사적 과업에 대한 과학적인 법칙, 역사를 통해 제기된 난감한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해답이 들어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시켜 주는 인간주의의 덕목이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