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험소설, 하나의 문학 투쟁
‘실험소설’은 과학적 실험을 수단으로 하여 일정한 유전 조건과 환경 속에 놓인 인간의 운명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졸라에게 과학은 인류가 행복해지기 위해 거쳐야 할 수많은 관문 가운데 마지막 관문의 열쇠다. 졸라는 그의 작품에 유전론과 환경결정론을 적용한다. 특히 자연주의 문학의 정수를 이루는 《루공-마카르가의 사람들》시리즈(1871∼1893)는 바로 유전론을 종축으로 하고 환경결정론을 횡축으로 해 쓰였다.
졸라는 〈저자의 말〉에서 실험소설을 하나의 “문학 투쟁”이자 “선언문”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여러 정치 체제가 급속도로 교체되었던 19세기 프랑스에서 그리고 작가는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 감각을 갖추어야 하며, 인간을 있는 그대로 탐구하고 모든 것을 해부하듯 분석하는 자연주의 작가를 “진실의 일꾼”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정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영원한 교훈이 될 작품을 남기고 싶다면 인간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과학, 육체, 사회
과학만이 인류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졸라에게 문제는 더 이상 심리학이 아니라 생리학이며, 심리가 아니라 육체다. 졸라의 소설이 동시대의 소설과 구분되는 가장 큰 변별점 역시 바로 육체의 탐구에 있다. 졸라 연구의 대가 앙리 미트랑은 이렇게 말한다. “자연주의 소설이 보여준 가장 새로운 양상은 육체의 발견과 노출에 있는데, 이 육체는 적나라한 알몸, 충동, 욕망, 쾌락, 무질서, 광기, 리비도와 관련된 육체다. 졸라의 현대적 진실은 그의 선배들 가운데 누구도 그처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진실인즉, 그것은 욕망의 주체인 동시에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다.”
특히 졸라는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 《나나》 등에서 식욕, 성욕, 폭력, 소진 등 인간 육체의 원초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탐구했다. 환경결정론자였던 졸라가 보기에 알코올 중독, 신경증, 성, 광기 등을 둘러싼 육체의 온갖 양상은 천박한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뒷골목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 자연주의 소설 이론의 핵심을 담다
《실험소설 외》에 실린 총 8편의 글은 모두 자연주의 소설 이론의 핵심을 다루고 있다. 우선 첫 번째 글 〈실험소설〉은 졸라의 이론적 성찰을 모두 담은 글이다. 작가의 기본 자질에 대해 역설하는 ‘현실 감각’,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환경 묘사를 강조하는 ‘묘사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주의자 졸라의 문학 이론을 보완하는 ‘《사실주의》’가 실려 있다.
그리고 신문기사의 경우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허용하면서도 연재소설의 경우에는 진실한 풍속 묘사마저 외설로 몰아붙이는 저널리즘의 상업적 속셈을 비판하는 ‘도덕성에 대하여’와 문학에서 진정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외설적 소재 자체가 아니라 외설적 소재의 불순한 이용임을 역설하는 ‘외설 문학’은 자연주의 소설에 부도덕성이라는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에 대한 항의 글이다.
끝으로 ‘문학에 대한 증오’와 〈공화국과 문학〉은 설령 자유와 정의를 강조하는 진보주의적 정치라고 할지라도, 정치가 문학을 얼마나 경계하는지를 강조한다(“정치는 혼탁한 우리 시대, 과도기적 우리 시대의 치명적 질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