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했다
바네사 나카테는 우간다 캄팔라에 사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잠깐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봉사 일을 찾고 있었다. 둘러보니, 멀리 있지 않았다.
2018년 아프리카 대륙은 예사롭지 않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길게 이어진 홍수로 동아프리카 지역은 농작물과 가축, 사람이 죽어 나갔다.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이 홍수를 유엔에서는 최악의 홍수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환경 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고, 기후 위기라는 말도 몰랐던 바네사는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지구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세계 정부에 묻고 싶었다. 도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냐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많은 약속을 했지만,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걱정, 슬픔, 두려움, 화, 어리둥절함, 좌절, 역겨움… 이 혼란과 좌절 속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을 시작한 10대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였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용감하게 나선 그레타에게서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바네사는 동생들과 함께 처음으로 캄팔라 시내에서 기후 파업 피켓을 들었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여성은 조용히 지내야 하고, 학교 졸업하면 시집가야 한다고 여기는 우간다에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잘려 나가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없을 수 있지?’
2020년 스위스 다보스 경제포럼에 맞춰 인터뷰한 기후 활동가 다섯 명 가운데, 유일한 흑인이었던 바네사는 〈AP통신〉 사진에서도 기사와 명단에서도 없었다. 잘려 나간 것이다.
기후 위기를 대하는 언론과 세계의 태도에 만연한 불평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바네사는 실망과 분노를 견딜 수 없었고, 생방송으로 10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게시했다.
“그들은 나만 잘라 낸 것이 아닙니다. 대륙 전체를 잘라 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 돼요. 아프리카는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대륙인데도, 우리는 기후 위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으니까요.”
이 일은 일파만파 퍼져나가 기후정의에 대한 목소리와 함께 전 세계가 바네사를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기후 위기가 인종과 성적 불평등, 정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 가도록 바네사의 활동과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기후변화의 첫 번째 희생자, 아프리카와 여성과 아이들
바네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 재난들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건기와 우기 흐름이 바뀌었으며 가뭄과 홍수로 집이 침수되고 사망자가 발생하고,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로 퍼져 갔으며, 해충의 출몰로 작물을 파괴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식량난에 허덕이는 수백만 명을 기아로 몰고 갔다. 콩고 숲은 파괴되고, 차드호는 마르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비상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기후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다.
특히 여성과 아이는 가장 열악한 상태에서 더 심각하게 삶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옥수수 한 자루를 받고 어린 나이에 결혼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늘고, 아이들도 학교가 아니라 거리에서 구걸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엔의 추정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집을 잃은 사람 가운데 80퍼센트가 여성이라 한다. 여성은 자기 삶을 지배하는 구조적인 성 불평등 때문에 더 극심하게 고통받고 있다.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석유산업으로 서구 사회는 그 문명의 이기를 누렸지만 그에 따른 막대한 온실가스로 고통받고 삶을 잃은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반구 저개발 국가들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세계 인구의 15퍼센트가 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 가운데 오직 2, 3퍼센트만 아프리카 사람 책임이다. 미국, 유럽, 중국, 아랍에미리트,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 보다 적은 양을 배출하며, 영국에 사람이 2020년 첫 2주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아프리카 여섯 나라 사람이 한 해 동안 배출할 양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데, 말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기후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풍요로워지고 부유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탄소의 대가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긴 것은 아닐까? 기후 재난으로 삶이 파괴당하고 고단한 일상을 이어 가는 그들을 모른 체하며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책은 기후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읽는 우리는 기후정의를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