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문화예술인 100명이 선정한 한국·외국영화 12편
- ‘2023 오늘의 영화’ 수상자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2022년 개봉한 영화 중에서 추천위원들의 호평을 받은 영화를 선정, 그 선정 영화에 평론들을 덧붙여 『202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이하 『2023 오늘의 영화』)를 내놓는다. 『2023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으로는 강유정(강남대 교수), 유지나(동국대 교수), 전찬일(경기영상위원장) 영화평론가가 참여했다.
『2023 오늘의 영화』는 영화계의 간절한 기대가 담긴, 2022년의 단어일 듯싶다. 무려 3년에 가까운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먼저 얼어붙어 가장 격렬히 고통스러웠던 곳 중 하나가 영화계였다.
2022년 한국영화의 주목할 만한 성과는 〈브로커〉의 배우 송강호가 칸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이미 이전의 어떤 작품에서 수상했어도 전혀 이상할 법 없지만 칸은 〈브로커〉로 남우 주연상을 전했다. 박찬욱 감독의 성숙한 연애담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 수상도 기억해야 한다. 두 소식은 영화의 회복을 알리는 칸 영화제가 제 궤도로 복귀하는 시점이었기에 더 선언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2023 오늘의 영화』는 매우 의미 있는 한 시점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긴 팬데믹 이후 회복기로 들어선 한국 영화, 전쟁과 질병, 플랫폼의 변화 속에서도 건재한 영화적 질문,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2023 오늘의 영화』는 100명의 영화평론가, 문화예술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하여 설문을 진행하였으며, 영화의 운명과 가치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담아, 고심 어린 선택의 결과들을 선보인다.
최종 선정된 좋은 영화는 〈헤어질 결심〉(박찬욱)을 비롯하여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가의 영화〉(홍상수), 〈오마주〉(신수원), 〈올빼미〉(안태진), 〈한산〉(김한민), 〈헌트〉(이정재), 〈본즈 앤 올〉(루카 구아다니노). 〈아바타〉(제임스 카메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니엘 콴), 〈우연과 상상〉(하마구치 류스케), 〈탑건〉(조셉 코신스키) 등 12편(한국영화 7편, 외국영화 5편)이다. “2022년을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선택”으로 어느 한편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영화요, 영화평론이다.
이 중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압도적인 추천을 받아 ‘2023 오늘의 영화’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기획위원 전찬일 평론가는 “황금종려상을 받아 마땅했던 올 칸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전작은 말할 것 없고 한국영화사, 나아가 세계영화사에서도 길이 빛날 역대급 걸작으로 손색없다”고 평했다.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마주한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신문, 잠복수사를 하며, 싹터가는 사랑의 감정을 다룬다. 탕웨이와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결합이 만들어 낸 “모호하고 애매하기에 더 매혹적인”인 작품이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이 영화는 박찬욱 영화의 형식미를 대변하는 현란한 매치컷과 시점 숏 이외에도 높이와 깊이, 수직과 수평의 프레임을 둘러싼 정교한 양식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평하며, “붕괴 이후의 사랑”을 새롭게 해석한다. “노을이 들이닥치는 해변의 점점 거칠어지는 파도 소리는 그 두려운 사랑의 침묵을 대신”하고, “사랑은 이 무서운 붕괴의 연안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 바다는 사랑의 붕괴가, 그리고 붕괴 이후의 사랑이 재등장하는 서래의 바다”이며, “서래의 바다는 새로운 붕괴와 죽음이 ‘마침내’ 시작되는 바다”라고 언급한다. 또한 “박찬욱의 영화가 브레송처럼 ‘연기’ 자체를 제거하는 극단적인 영화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지의 카메라가 낯선 시공간의 몽타주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서 시네마톨로지”에 가까우며, “〈헤어질 결심〉은 필름 누아르 혹은 그 기원으로서의 탐정 추리서사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평한다.
설문에 참여한 추천위원들은 〈헤어질 결심〉 선정 이유에 대해 “시가 된 영화, 마침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정취”라며, “영화는 극장을 떠났으나 아직 관객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만들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곽영진)고 평했다, 그리고 “박찬욱 버전의 〈현기증〉”으로 일축하며, “이에 더해 김수용의 〈안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영화사에 제대로 안착”(한상훈)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짙은 안개 속에서 미묘한 감각을 활용해 극을 끌고 가는 섬세함”은 박찬욱의 새로운 발견이며, “마지막 순간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은 또 다른 차원의 강렬한 영화적 경험”(설재원)을 선사한다”고 해석했다.
책의 뒤에 붙인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어른스러운 사랑 영화라고 말할 때 이런 것도 아마 언급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인터뷰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폭넓게 해줄 것이다.
제가 어른스러운 사랑 영화라고 말할 때 이런 것도 아마 언급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마술적인 하나의 순간, 아주 드라마틱한 전환이 있기보다는 좀 ‘차근차근 작은 것들로 쌓아가는 그런 발전이 더 현실적이고 더 우리의 삶에 가깝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거, 그런 표정이나 예를 들면 그냥 잠을 재워준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상한 근거 없는 기법을 가지고 그냥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하는데 심지어는 그게 중국어로 바뀌어서 내용도 모르는 어떤 그냥 소리로 전환되고 그런 것만으로도 꿀잠을 재울 수 있다 하는 식의 그런 작은 것들. 첫 만남에서도 ‘마침내’라는 단어를 듣고 그것을 음미하면서, 그리고 가만히 빤히 보면서 ‘저 사람의 패턴을 알고 싶다’라는 그런 호기심. 이런 식의 것들로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초밥을 먹고 같이 상을 치운다, 이런 작은 행위들. 제가 그전에 만들었던 영화에서의 아주 극적인 전환의 마법도 좋지만 또 이런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강유정) 중에서, 본문 130쪽
인터뷰를 진행한 기획위원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2022년은 “〈헤어질 결심〉의 해”였으며,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난 이후, 인생 최고의 로맨스 미스터리 영화를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봄으로써 우리 삶은 모호하고 애매하기에 더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삶과 사랑의 본질을 조금 더 가까이 만지고 돌아보며 질문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 감상의 가이드를 붙일 수 있다면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의 주문처럼 그렇게 충분히, 천천히, 느리게 경유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2023 오늘의 영화』는 단순한 앤솔로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여 ‘문화예술운동’의 실천적 차원을 의도하고 있다. 이 작은 시도가 동시대 문화의 중핵과 조우함으로써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여린 물줄기들이 꾸준히 연대해 나가 언젠가 세계영화사에 〈한국 영화〉라는 사조가 만들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