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에 ‘꽂힌’ 50대 여성 과학자이자 화가,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으로 관찰 여행을 떠나다
수리남에서 메리안은 2년간 동식물을 관찰하여 스케치하고, 각종 표본을 만든다. 이는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수리남의 더위가 문제였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엉겅퀴와 가시덤불도 문제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새로운 곤충을 발견하고 이를 기록하는 기쁨이 있었다. 자그마한 곤충의 생김새, 무늬, 털의 빛깔까지 관찰했고, 때로는 자신이 머물던 집 정원으로 곤충을 가져와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메리안은 열대병에 걸리고 만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 계획했던 3년의 여행을 단축한 채 그녀는 딸과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다. 메리안을 돌보기 위해 원주민 여성 한 명도 같이 배에 올랐다.
수리남에서 관찰한 것을 책으로 펴내기까지는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기록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기도 했거니와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 수리남 여행에 들었던 경비를 갚으려면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출판업자의 집안에서 성장했고 줄곧 자신의 책을 펴내왔으니, 요즘 말로 치면 ‘독립출판’에 자신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출판업자들이 그렇듯 수익을 장담할 순 없었다. 그녀 자신이 서문에 밝혔듯 책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에 놀라 단념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을 만큼 나름의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메리안은 그림을 그리고 원고를 쓰는 와중에 암스테르담의 신문에 광고도 하며 책의 존재를 알려 나갔다.
다행히도 출판은 대성공이었다. 메리안은 이번에 출간한 한국어판의 모본이 된 네덜란드어판, 그리고 라틴어판을 동시에 출간했다. 전자가 네덜란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네덜란드 바깥의 유럽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을 터. 러시아의 표트르대제를 비롯하여 나라 안팎의 많은 이들이 메리안의 책을 사들였다. 연구자를 비롯하여 타국의 동식물에 관심을 갖는 애호가들도 매료시키는 책이었다. 물론 신항로를 타고 전해오는 머나먼 타국 물정에서 느끼는 호기심이 그들의 기저에 있었을 것이다.
열대 곤충과 그 먹이식물을 함께 그린 60컷의 그림,
이에 대한 정밀한 관찰의 기록
무엇보다도 《수리남 곤충의 변태》의 그림에서는 메리안의 기획이 돋보인다. 그녀는 하나의 곤충이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 되기까지의 모습을 그 먹이식물과 함께 한 장의 그림 안에 담아냈다. 곤충의 일생을 한눈에 들어오게 작업한 것이다. 현대의 연구자들이 그녀의 그림에서 생태주의적 세계관의 맹아를 보는 듯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획 때문이었다. 또한 당대에 출간된 많은 동식물지(動植物誌)들에서 그림이 동식물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메리안은 자신의 그림이 그러한 용도로만 쓰이기 않기를 바랐다. 전자의 그림 상당수에 설명을 위한 숫자나 글이 여럿 덧붙여진 반면, 메리안은 그러한 것들을 화폭 안에 들이지 않고 그림 자체로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다. 이는 동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취미로 이를 애호하는 이들까지 독자로 염두에 둔 메리안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메리안의 아이디어와 예술적 재능 때문에 곤충 연구자로서 메리안의 업적이 다소 덜 부각되기도 한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협회(Maria Sibylla Merian Society)의 창립자인 생물학자 케이 에더리지(Kay Etheridge)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자연주의 삽화가들이 메리안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만큼이나 후대 생물학자들이 그녀를 기리며 여러 동식물의 속명 등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린네의 이명법(二名法, binomial nomenclature)이 확립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메리안의 섬세하면서도 정밀한 곤충 연구는 이후 많은 이들의 연구에 초석 중 하나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또한 《수리남 곤충의 변태》에 현지인, 특히 현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식물과 곤충을 음식으로 또는 약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기록하는 등 메리안의 연구에는 동시대 여성들이 보여주곤 했던 동식물에 대한 실용적 관심 또한 드러나 있다.
주변부에 있던 한 인간의 삶과 업적,
20세기에 들어 새롭게 조명되다
당대에 일약 암스테르담의 저명인사가 된 인물이지만 이후로 메리안의 존재는 희미해졌으며, 그녀가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살아생전에도 여성이라는 점이 하나의 장벽이었는데, 바로 그 점이 그녀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그녀가 새로이 호명된 것이다. 메리안에게는 이 외에도 여러 장벽이 있었다. 그녀가 국민국가가 건설되기 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이라는 점은 현재의 독일과 네덜란드가 모두 그녀를 오롯이 자신의 시민으로 기리는 데 다소 문턱이 되기도 했다. 또한 둘째 딸 도로테아가 메리안의 작품 중 상당수를 러시아로 가져가면서 그 작품들이 다수 러시아에 보관되어 있는 점도 그녀의 활약상을 연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이 여성의 얼굴은 결국 독일의 지폐와 우표에 새겨졌고, 구글은 그녀의 생일에 기념 로고를 제작했으며,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신의 작품 《홍수의 해》에서 그녀를 성인(聖人)으로 등장시켰고, 롤플레잉 게임 ‘대항해시대’에서는 모험하는 캐릭터로까지 만들어냈다. 그녀의 그림이 뉴욕과 런던의 경매에서 고가에 판매된 것은 물론이다. 오래전 한 여성이 성취해낸 이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매력적인 한 인물을 비롯하여 그녀가 보여준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