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살과 탄압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
국내 학계와 관련 사회단체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자 규모를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인명 피해와 그에 따른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지역공동체가 분열되었고 민족 분열은 고착화되었다. 저자는 1부에서 공주 살구쟁이와 르완다 학살 현장 방문, 진실화해위원회로서의 활동과 소회를 통해 민족적 화합과 반공이란 이름 아래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도모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기 7개월 전인 1979년 10월 16일, 부산과 마산에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유신정권은 독재정권의 불의에 항거한 부산과 마산 시민들에게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고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1,500여 명이 연행되었고 100여 명이 기소되었으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자는 부마민주항쟁과 10·26 정변, 광주민주화운동의 연결성을 해명해야 진정한 한국 민주화의 역정을 되돌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산은 1980년대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축이었다. 이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왜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 왔는가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3부에서 부마민주항쟁의 발달과 의의, 진상규명의 성과와 과제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 정치에 흔들리는 역사
2008년 10월 30일 교육과학부(교과부)는 자신이 검정한 금성출판사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수정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집필진이 수정 지시를 거부하자 정부는 저작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도록 출판사를 압박했다. 이 사건은 역사교육을 정치도구화하여 정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2부에서 금성출판사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으로서 자주적인 역사 교육의 가치를 말하며 이를 위한 우리 모두의 책임을 강조한다.
일제강점기 36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친일파의 방해 공작으로 친일 청산에 실패한 우리나라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결과라는 역사수정주의자나 일부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활개를 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외교적 마찰을 염려한 정부에 의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저자는 4부에서 강제징용 소송 판결, 강제동원역사관 등의 쟁점을 통해 일본과 우리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한편 남과 북, 동아시아 평화의 가치를 전달한다.
▶ 진정한 치유와 화합을 위한 과거사 청산
어두운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고 마침내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곧 완벽한 민주주의를 의미하지 않음을 여러 사건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맞는 민주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여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 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
과거사 청산은 그동안 은폐되어왔거나 왜곡되었던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공존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결코 ‘과거의 한풀이’가 아니며 가해자를 단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이 없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과거사 정리 또한 나라의 발전과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