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통해 세 번 결혼한 헤세의 삶
헤르만 헤세의 작품과 내용은 책 머리말에 대략 요약하여 소개되어 있으므로 그의 사생활과 가족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헤세 집안의 부인들은 모두 연상의 여인들이었다.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종교가인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Dr. Her- mann Gundert)는 부인보다 5년 연하였으며,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Johanes Hesse)도 어머니 마리 헤세(Marie H- esse)보다 5년 아래였다.
또한 시인인 누나 아델레(Adele Gundert)는 한 살 아래인 사촌 동생과 결혼했다.
헤르만 헤세 역시 첫 아내 마리아 베르누리(Maria Bern- üllë) 보다 아홉 살이나 연하였다.
마리아 베르누리는 옛 도시 바젤의 유명한 수학자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은 여자였는데, 그 무렵 누이동생과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곳은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했다. 집안의 반대가 있었으나 두 사람은 결혼을 강행했다. 결혼 당시 27세인 헤세에 비해 신부 마리아는 36세로 아홉 살이나 위였다. 그녀의 나이 36세라고 하면, 헤세의 어머니가 그를 낳던 나이였다.
한편 그녀의 체격, 성격, 그리고 음악적인 소양까지도 헤세의 어머니를 닮아 있었고, 또한 이름도 똑같았다. 이 결혼은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두 사람은 많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여 장남 브루노, 둘째 하이나, 셋째 마르틴이 태어났으나 우울증적 정신질환이 있는 마리아는 정신질환이 악화해 별거 생활을 하다가 결국 합의이혼에 이른다.
이와 같은 생활상으로 보면 헤세에게는 오히려 독신 생활이 적합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여성을 다루는 데 문외한이었다.
‘나는 친구와 사귀듯 여성을 만났다’라고 그이 작품에서 술회하고 있다.
이혼 후 그도 신경쇠약에 걸려 바덴의 온천장에서 유황온천 치료를 받았다. 훗날 이곳은 헤세 만년의 작업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나이 50 고개에 접어들자, 육체의 쇠퇴와 장애에 고민하며 ‘이제 내 인생의 길은 내리막이다.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현상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고, 게다가 20세 연하인 두 번째 아내 루트 뱅거(Ruth Wenger)마저 떠나자 신변의 황량함에 마음의 균형을 잃고 쓰는 작품마다 자신의 추잡함과 부패에 격렬한 혐오를 느껴 죽기를 바람과 동시에 사랑하는 여성을 죽이는 망상도 한다.
이 무렵 마침내 헤세에게 좋은 여성이 나타난다.
니논(Ninon Ausländer 1895~1966) 여사는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령이었던 체르니비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빈대학에서 의학과 미술사를 전공, 민속학에도 일가견을 가진 수재였다.
풍자화가 도르빈(B. D. Dolbin)과 결혼했으나 생활은 불안정했다.
그녀의 나이 14세 때 헤세에게 편지를 띄우고 27세 때는 전남편과 이혼하고 직접 헤세를 방문한 다음 취리히에서 인연을 맺어 동거생활에 들어가 정식 부인이 되었다.
이렇듯 헤세의 삶은 사는 방법과 죽는 방법에 있어서 후회 없는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