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라서 힘이 드는 어떤 날에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시를 읽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함께 읽고 함께 쓰고 함께 성장한
평범하고도 특별한 시 수업 이야기
시를 좋아했던 한 국어교사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과 나누고자 시작한 시 수업 이야기 《좋아하는 것은 나누고 싶은 법》. 이 책의 저자 최지혜 선생님은 어느 시절 노량진을 부유하던 청춘이었다. 그는 힘들 때마다 펼쳐보던 작은 시집들에서 귀한 위로를 얻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 나올 때 그의 곁에는 늘 단단한 시가 있었음을 기억했다. 그때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시가 주는 감동과 울림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시의 품 안에서 푹 쉬고 생각하고 성찰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는, 그런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시가 좋았다
아이들과 시를 읽는 수업을 해야겠다
저자도 교사이기 이전에 한때는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었다. 노량진역의 비릿한 수산시장 냄새를 맡으며 학원으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면서 암흑 같은 현실을 지나왔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힘겨운 현실을 분리하고자 했던 수험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럼에도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했다. 비록 시험을 위한 것이었지만 손에 쥐어진 작은 시집에서 기형도와 이성복을 알게 됐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시간 속에서 빛나는 위로를 얻었다.
저자는 이제 선생님이 되어 자신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아끼던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기로 결심한다. 저자에게 시는 때때로 가슴에 약을 발라준 존재였다. 이런 시를 아이들과 함께 나눈다면 아이들 중 누군가는 예전의 나처럼 시구 한 줄에서 위로를 받고 힘들 때마다 기대어 울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늘어나면, 슬프고 힘이 들 때 자신을 달래줄 방편이 한 가지 더 생기는 셈”이니까.
물론 입시에 찌든(?) 아이들과 시를 읽고 쓰고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시는 ‘난해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능 시험에서 ‘시’는 언제나 분석의 대상이고, 시구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답을 알아맞혀야 하는 시험문제였다. 알쏭달쏭한 표현 뒤에 ‘진짜’ 의미를 숨겨놓고 그것을 찾아내라는 난해한 문제.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비록 시험을 계기로 접했지만 마음으로 함께 시를 읽어낸다면 시에 대한 오해를 벗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삶을 돌보기 위한 시 수업
살면서 한 번쯤은 시집을 넘기게 될 아이들을 위하여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시를 통해 ‘새로운’ 수업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저자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왜 꼭 새로운 수업이어야 할까?’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시를 느끼고, 즐기고, 생각하며 성장하는 게 시 수업의 핵심이었다.
저자는 자신보다 앞서 시 수업을 했던 선배 교사들의 사례를 찾아보고, 자신이 경험한 시 쓰기의 과정을 떠올려보았다. 또한 그동안 해왔던 시 수업을 돌아보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아이들과 함께 읽을 시 목록을 정리했다. 함께 읽을 시 목록이 하나둘 채워지면서 저자의 수업 곳간도 그득해졌다.
저자는 단순히 시를 쓰거나 시에 대한 감상을 말해보는 것을 넘어서 아이들이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수업 형식을 고민했다. 친구의 고민을 듣고 다른 친구가 그에 맞는 시를 처방해주거나, 한 편의 시를 영상으로 만들어 시각화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활용해 시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해보는 등의 시도를 했다. 일본의 시 형식인 ‘하이쿠’라는 형태를 빌려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또 아이들과 함께 시를 소리 내어 낭독하면서 시의 리듬과 울림을 교실 가득 채워나갔다.
때론 뜻하는 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아 당황하기도 했고, 지나고 나니 더 나은 방법이 떠올라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교사라면 누구나 겪을 시행착오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지금은 ‘망한 수업’처럼 느껴질지라도 시를 읽고 쓰는 일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저자 스스로 교사로서 성장하고 매 시간, 매 학기, 매해마다 한 뼘씩 자라나는 아이들을 지켜봤다.
시 수업을 망설이는 선생님
너무 걱정 마세요, 시가 도와줄 거예요
많은 교사들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 최지혜 선생님은 시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진심을, 또한 시가 가진 힘을 믿었다.
책 속에 기록된 시 수업의 풍경들은 단순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란 이런 것이다.’ 하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시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는 과정에 가깝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감상을 나누면서 위로받고 다독이는 정서적 성장의 시간.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생들과 학생들이, 그리고 선생님과 선생님이 시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삶을 이해하는 성찰의 시간. 시는 짧지만 시를 통해 마음을 나눈 이 시간들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