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사진엽서가 기획한
‘조선적인 것’을 향한
지배와 통치의 문화정치학
저자는 전작(『일제 사진엽서, 시와 이미지의 문화정치학』)을 통해 일제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에 대한 배타적 타자화와 근대천황제로의 아찔한 예속화를 살폈다. 이를 위해 식민지 시기 발행된 사진엽서들을 다섯 종류로 나눈 뒤, 보다 구체적인 11개 항목을 각각의 연구와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정리하자면, 먼저 사진엽서들을 ① 원리와 이념, ② 언어와 문학, ③ 지식과 취미, ④ 일상과 생업, ⑤ 전쟁 등의 범주로 구분한 뒤, 근대천황제의 이념, 한ㆍ일어 대역(對譯) 우편엽서, 국경생활의 정서, 식민도시 경성과 평양, 조선 투어리즘의 중심지 금강산과 경주, 조선부인의 하루 생활, 섹슈얼리티와 유희의 조선기생, 전근대적 노동과 게으름의 대명사 조선남성, 총력전 시기 병영ㆍ병사화된 조선(인들) 등에 드러나거나 감춰진 파시즘적 폭력성과 날조된 미학적 기호들의 허구성에 주목했다.
거기서 저자는 일제를 포함한 제국주의 열강이 사진과 그림, 시(가)와 산문을 통해 자기 권력의 화려함[꽃]과 날카로움[칼]을 전가(戰家)의 보도(寶刀)로 치밀하게 휘둘렀음을 알게 되었다고 적는다. 그럴수록 근대문명에 뒤처졌던 식민지(인), 즉 야만과 무지의 ‘인간동물’들은 식민지 근대화를 빙자한 계몽과 교화, 지배와 개발의 의사(疑似)-주체이자 소외된 타자로 예외 없이 억압되고 감금되었다는 사실이 뚜렷해졌다. 잘 만들어진 친밀함과 근린(近隣)의 시선을 앞세웠지만, 제국주의의 거친 행보는 모든 것에서 뛰어난 우승(優勝)의 제국 아래 식민지의 자연과 종족, 문화와 생활을 헤어날 길 없는 열패(劣敗)의 감옥으로 밀어 넣는 폭력적 투옥 행위에 훨씬 가까웠다.
식민주의 미디어에서 찾아낸
역사적이고 민중적인
조선의 정서와 소리들
이번 책도 큰 틀에서 보자면 전작의 문제의식과 연구의 방향성을 공유한다. 사진엽서에 드러난 식민지 조선의 생활상과 조선인의 형상, 사진엽서를 제작ㆍ배포하는 일제(문화자본)의 문화정치학, 사진엽서의 유통과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한 조선인의 식민지 의식, 그리고 사진엽서에 적힌 시가와 산문을 실질적으로 작성한 일제의 식민주의 의식 등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작과 여러 면에서 구분된다. 무엇보다 연구와 해석의 초점이 사진엽서에 수록된 ‘시가와 노래’에 놓인다. 저자는 먼저 ‘일본적인 것’에 의한 ‘조선적인 것’의 식민화 또는 제국의 식민지 ‘흉내 내기’ 과정에서 식민권력의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던 ‘조선민요’의 계획적인 선택과 배치, 전유와 번역 등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 결과 사진엽서 위에서 ‘제국(국민)의 소리’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제국 귀퉁이의 ‘지방적인 것’으로 그 가치와 위상이 깎여버린 조선민요들의 처지를 소상히 살펴나간다.
또한 저자는 조선적인 것을 소재로 취한 ‘일본(신)민요’의 창작과 보급에 일제가 기울인 많은 노력들에도 주목한다. 사실 그러한 시도들을 통해 식민권력은 조선(인), 즉 ‘붉은 땅[赤土]’과 ‘토인(土人)’에 대한 지배와 교화의 의지, 개척과 착취의 욕망을 차곡차곡 제국(인)의 보편적 감정으로 끌어올렸다. 이 모두가 일제의 우수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전통문화를 날조ㆍ각색하는 파시즘적 미학 주체의 본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나아가 저자는 조선민요가 생명력과 가치를 잃지 않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조선의 소리’로 거듭나는 모습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조선민요가 가창자(향유자)나 새로운 활용자를 통해 자기 내부에서 꿈틀대는 자생성과 역사성, 민중성과 저항성을 (무)의식적으로 발현하고 수행했음을 분석해낸다. 무릇 노래란 반복되는 리듬과 규칙적인 발성을 통해 특정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내용과 감정을 초월적ㆍ보편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예술 장르이기에, 저자는 나라 잃은 조선민요도 이 장점만은 뺏기지 않고서 권력 정점의 제국(국민)의 소리였던 일본(신)민요에 대한 예속과 통제 속으로 무력하게 함몰될 뻔한 비극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적는다.
각 장의 서사
제1장 「제국의 취향, 전시되는 아리랑」은 가장 많은 종류와 수량을 자랑하는 「아리랑」 엽서가 주된 대상이다. 사진엽서의 「아리랑」(조선어 및 일역본)과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김소운의 「아리랑」 일역(日譯)과 일본 소개, 일본 자체의 번역본 「아리랑」의 생산과 소비 등을 실마리 삼아, 조선민요 「아리랑」의 대중성과 식민성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생명력과 자생성을 잃지 않는 자율성과 독립성의 발화체로 살아남는 「아리랑」의 위대함을 새삼 확인했다고 말한다.
제2장 「조선의 민요, 원시와 전통의 경계」에서는 「아리랑」 이외의 각종 조선민요가 어떻게 사진엽서의 소재로 대상화 또는 타자화되었는지에 주목한다. 여기에 모아진 조선민요들은 예외 없이 일본어 번역본이거나 일본 화자가 조선의 풍속과 인물을 노래한 ‘의사-조선민요’들이었다. 일본어의 감각, 정서, 형식에 맞게 변형되거나 아예 그들의 입과 문자를 빌려 새로 창안된 의사-조선민요들에 얽힌 끔찍한 식민성은 제국화/지방화의 기이한 동거와 그 아이러니한 모순성이 어떻게 발생하고 고착되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제3장 「제국의 ‘조선적인 것’에 대한 전유와 소비」는 두 세트의 『조선정시(朝鮮情詩)』(엽서세트)에 실린 두 종류의 노래에 초점을 맞춘다. 감춰진 일본 화자가 노래하는 『조선정시』와 일본 화자를 드러낸 와카(和歌)가 그것이다. 이 엽서에는 전근대와 봉건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 조선인 남녀노소의 생활과 문화를 중심으로, 임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에 빠져 있는 조선기생의 모습이 주로 담겼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정시』 엽서세트는 조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운 채 식민화된 정서와 소리가 어떻게 출현하는지 새삼 확인시켜준다.
제4장 「압록강절ㆍ국민가요ㆍ선전가」와 제5장 「압록강절ㆍ제국 노동요ㆍ식민지 유행가」는 일본 신민요 『압록강절(오룟코부시)』(엽서세트)의 의미와 가치를 고찰한다. 이 노래는 한만(韓滿) 국경지대인 압록강의 풍경과 정취, 그곳을 오르내리는 뗏목꾼의 쓰라린 현실, 그들을 상대하는 조선 기생과 일본 게이샤의 서글픈 정한(情恨)을 담아냈다. 그러나 이 노래의 기원과 확장 과정을 좇다보면, 가사의 낭만성과 감정의 대중성을 압도하는 전체주의적 성격과 군사적 본질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제6장 「『국경이백리』ㆍ백두산절ㆍ한만 개척」과 제7장 「그림엽서 『백두산절』ㆍ오족협화ㆍ총력전」은 일본 신민요 『백두산절(하쿠토산부시)』(엽서세트)을 대상으로 한다. 최남선에 의해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명명된 백두산은 일제의 식민화를 거치면서 한만 개척과 지배를 위해 비적(匪賊)이나 한ㆍ중의 저항군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국경 수비의 거점으로 떠오른다. 이런 까닭에 『백두산절』 단편들은 처음에는 백두산과 압록강 4계절의 풍취와 인간사를 향수심에 덧붙여 부르던 서정적 군가에서 근대천황제 수호와 멸사봉공의 의지를 다짐하는 총력전의 군가로 급속히 퇴폐화된다.
제8장 「송화강ㆍ황량한 만지(蠻地)ㆍ개척된 낙토」는 그림엽서세트 『송화강천리』를 한국의 연구집단에 처음 소개하고 해석하는 장이다. 『송화강천리』는 동북 만주를 굽이굽이 흐르는 송화강의 풍경과 만주 개척민들의 생활상 그리고 만주 방어에 나선 관동군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노래의 핵심이 만주를 기점으로 삼은, 일제의 세계를 향한 폭력적 팽창주의와 그 방법으로서 총력전의 옹호에 바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백두산절』과 근친성이 두드러진다.
제9장 「소학생의 노래, 소국민의 직분」과 제10장 「소국민의 음악, 소년병정의 총력전」은 1920~30년대에 쓰인 『보통학교창가서』와 『보통학교보충창가집』, 1940년 전후에 교육된 『초등창가』와 『초등음악』의 전체주의적 성격과 폭력적 본질을 밝힌다. 식민지 초기에는 조선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에 대한 음악교육이 그런대로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근대천황제에 충성하는 ‘충량한 신민’의 육성과 확장이 중요시되면서 조선아동의 노래는 숭고한 일본정신의 내면화와 ‘전선총후(前線銃後)’에 헌신하는 ‘소년병정’ 되기로 집중된다.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가 식민의 땅에 흩뿌린 ‘전사자 숭배’의 씨앗 되기가 조선아동들의 윤리이자 의무였다는 사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일제의 조선 지배에 대한 최고의 저열함과 퇴폐성이 존재한다고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