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강과 눈강을 보지 않고 우리 역사를 논하지 말라!”
장장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답사 여행의 기록
이 책은 광개토태왕비, 백두산, 발해 상경용천부 등 우리에게 친숙한 유적지뿐만 아니라 상고시대 우리 조상들이 활약했던 송눈평원부터 부여족의 시원으로 추측되는 흑룡강성 북쪽의 아리하,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들의 활동 무대 중 하나였던 내몽고자치구의 만주리 등 상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장대한 여정을 담고 있다. 과거 동북아를 무대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낸 우리 조상들의 흥망성쇠를 돌아보며 찬탄과 비탄이 교차하는 저자의 답사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레 되새기게 된다.
교통 형편, 기상 조건과 더불어 중국 측의 의도적인 흔적 지우기(?) 등의 숱한 난관을 뚫고서야 간신히 다가갈 수 있었던 곳들도 많았다고 한다. 동이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치우천황 묘(산동성 문상현 남왕진 소재)는 현지 주민들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운 좋게 위치를 아는 택시 기사를 만나 그 실물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 상고사에서 논란의 대상 중 하나인 기자의 묘(산동성 조현 소재)는 한 마을 주민의 안내 덕분에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본 결과 이 근처가 은나라의 본거지이고 기자의 고향이니 기자 무덤도 평양이 아닌 이곳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지리적 여건에도 부합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최근에야 한국에 알려진 눈강현의 부여 유적지의 경우,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한다. 동북공정 탓인지, 아니면 지형이 변한 탓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안타깝다. 치치하얼 북쪽 250킬로미터, 내몽고자치구와 흑룡강성 경계에 부여의 유적지가 있었다니 우리네 역사 상식으로는 짐작도 못 한 사실이다. 이곳은 며칠 전에 답사한 부여 유적인 길림성 백성시의 한서유적지와 위도가 비슷하다. 여기 북쪽까지도 상고시대 우리 민족 국가 부여의 강역이니 장춘 이북 좁은 지역이 부여였다는 식민사학자(일제 총독부 사학자)들 주장이 거짓말임을 확실히 알겠다. 부여의 강역은 광활했고, 고구려 유리왕이 태자 해명에게 부여가 무섭다고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79-80쪽)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 다르게 현장 답사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심상치 않은 의문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령 적봉시 외곽에 있는 삼좌점 산성의 경우, 성을 쌓은 방식, 석축원형제단과 적석총의 존재는 이 유적이 한족이 남긴 것이 아니고 우리 동이족 유적임을 말해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4천 년 전이면 고조선 초기다. 따라서 이 산성을 고조선 산성이라 명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산성 이후 고구려 산성이 나타날 때까지 같은 유형의 산성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식민사학계는 고조선 산성으로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 고조선 산성이 고구려 산성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식민사학계 논리가 맞다고 해도 없는 것과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다. 부정하기 전에 치열하게 발로 뛰고 연구하는 것이 먼저다. (228-229쪽)
중국이 동북아에서 우리 역사 지우기를 완료하기 전에, 우리 역사학계가 반드시 귀 기울이고 그 실상을 심층 연구해야 할 시사점들이 아닐 수 없다.
“북방 민족들의 역사도 우리 역사다!”
한민족과 북방 민족의 역사 유적을 총망라한 값진 답사 성과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 조상들의 나라인 부여, 고구려, 발해의 자취 못지않게 북위를 세운 선비족, 요를 세운 거란족, 금을 세운 여진족 등 동북아를 호령했던 북방 민족들의 역사를 우리 형제 민족의 역사로서 적극 살피고 보듬어냈다는 것이다. 거란족의 요나라 성 흔적, 금나라 상경 유적지, 부여족과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이 힘을 기른 지역인 백성시의 박물관, 대흥안령박물관, 노몬한 등에 지금도 오롯이 살아 숨 쉬는 북방 민족들의 발자취를 찾아낸 여정은 이제까지의 여느 답사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값진 답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방 민족들을 소중화사상의 관점에서 오랑캐로 보고 멸시했던 우리의 전통적인 역사관을 비판하며 그들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연구해야 할 당위성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북방 민족들은 대부분 오늘날 사라진 민족이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망한 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 중국에는 만주족 말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없다. 북방 민족사를 연구하는 중국 학자들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한족 입장에서 연구한다. 북방 민족 중에서 지금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몽골 그리고 일본이다. 일본은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 북방 민족사를 우리 관점에서 연구하고 정리해야 한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대대적으로, 그러나 조용히 추진해야 한다.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먼 후일 반드시 크게 쓰일 것이다. 대륙성과 해양성이 발휘될 때 우리 민족은 융성했다. 북방 민족사 연구는 바로 우리 역사에서 대륙성을 회복하는 기초 작업이다. (100-101쪽)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반도 통일 이후 동북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기획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관점에서 북방 민족사를 새롭게 연구, 정립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는 자가당착적 국수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당차게 가슴에 품고 있었던 대륙의 혼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소중한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