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서문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속에 함축된 논박법과 존재론적 정의내리기, 그리고 이에서 발전한 가설-연역적 방법은 현대에서는 인간의 실천적 세계가 아닌 운동이나 생성-소멸이 있는 자연 세계에서 역학적 ‘법칙’(이데아나 형상)을 발견하려는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귀납법을 전제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방법을 현대와는 다르게 인간의 행위나 실천적 영역에서 사용하면서 실천적인 영역에서의 도덕적 사태(덕)들의 본질을 형상(eidos)이나 이데아(idea)라고 불렀고, 이를 자연과학의 영역에서까지 사용하였다. 그런데 자연이나 인간의 실천적 영역의 경험한 것들에서 귀납하거나 소크라테스의 가설-연역적 방법에 전제되는 형상이나 이데아는 인간의 경험적 사태가 관계하고 있는 전체(자연이라 불리는 우주와 인간의 행위를 인도하는 정신이라 불리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한편으로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통성이 함축하는 일반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 양자 사이에는 모순은 아니더라도 차이성과 더불어 반대적 속성이 존재한다.1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탐구한 이러한 이데아나 형상들은 다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차이성이나 반대적 속성을 지닌 이데아나 형상들이 어떠한 연관성 아래서 통일되거나 조화 가운데 있게 할 또 다른 차원의 위계적이면서도 보편적 질서(예를 들면, 이데아들이나 에이도스들의 상위에 존재하는 선의 이데아와 같은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 그리고 형상들의 이러한 위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질서의 존재를,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일자 존재론으로 합리화 하고자 한다는 데에서 문제가 복잡하여졌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이데아나 형상이 함축한 보편성의 존재는 감관-지각적 경험에서 현상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기하는 영혼이 직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유는 ‘영혼의 자기 자신과의 대화’ 이고, 영혼의 본질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사유(nous: 정신)에서 성립함으로『( 테아이테토스』184d-185c),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심리적 영혼(psyche)과 존재론적 사유의 정신(nous)은 동근원적인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존재론적 사유의 정신과 심리적 영혼은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존재론적으로는 신적 정신(nous: logos)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는 결코 감관-지각적인 체험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존재이다.3 다른 한편, 이데아나 형상을 경험적 사실들에서 (분석-종합하는) 사유에 의해 귀납한 것으로서 자연현상이나 심리현상을 설명할 ‘일반 법칙’이라고 할 경우에도, 이러한 법칙은 귀납적 비약(inductional leap)을 함축한 것으로서 자연이나 인간 실천적 영역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일 수 없다. 제1권에서 살펴보았듯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 나타난 일자 존재 자체(to eon)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운동하는 현실 세계(reality)와 이원론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reality)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면 반대와 모순적 속성을 함께 지니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운동하고 변화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이 현실 세계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요소가 존재한다면, 이 양자의 세계관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거나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실천적 영역은 물론 자연현상까지도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으로 설명하려는 형상론이나 이데아설은 인간의 현 실(reality)4에 대한 설명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난점이나 모순점 때문에『, 파르메니데스』편에서는 하나와 여럿으로 표명된 형상의 현상들과의 이중적 관계가 지니는 기능적 측면이, 이와 상보적 관계에 있는, 전체와 부분의 배중률에 따르는 수학-기하학적인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적 논리에 의해서 비판되고 있 다.5 즉 자연현상은 물론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실천적 영역까지도 설명하려는 [유물론인 원자론에 대응한] 관념론인 이데아론이『 메논』편에 나타나 있듯이, 과연 물질에 관한 원자론적 사상을 포용하면서 인간의 모든 실천적 영역에서의 경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는 진실로 의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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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A. N.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플라톤 철학 전체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이후 플로티노스나 헤브라이즘이 서구 사상사에 유입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물론 근대에서는 영국 경험론자들은 물론, 데카르트나 칸트, 그리고 헤겔이나 후썰처럼 새로운 철학설들을 창안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플라톤 철학 전체에 대한 연구서가 없는 한국에서 플라톤 철학을 대화편들 중심으로 단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서구 철학자들의 연구를 답습하거나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되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철학적 사색의 전통을 마련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에서 기원하는 철학(philosophia)이라는 학문이 교육철학이 없는 한국의 특이한 교육 제도로 인한 열악한 환경에서 쇠퇴하고 있다는 상황인식과 그러면서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한국인들의 평균 학력이 대졸에 가깝기에 과학계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의 많은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요구가 우심하기에, 절박한 심정에서 이 저서를 시급히 출판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이 저서를 출판하는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충남대 출판문화원과 책을 아름답게 꾸며준 편집부에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2019년 10월 14일 초가을 아침,
보문산 기슭 서재에서, 여석(礪石) 송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