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서문 ]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움직일 때 바람이 불고, 높은 곳에 있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 운동에너지가 생기며, 높은 온도의 열이 내릴때 열전달이 일어난다. 결국 기압, 위치 또는 온도차이가 없어지면 바람도 불지 않고 운동에너지도 생기지 않으며 열전달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이 멈춰 선다. 다시 말해, ‘멈춰 선다는 것’은 엔트로피 (entropy) 가 무한대로 열에너 지가 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영에 가까운 평형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자연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수 없는 분자, 원자, 또는 원자핵도 외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 불안정하게 되었다가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든 화풀이를 하면서 편안하게 되려고 한다. 이 화풀이를 할 때 자연적으로 에너지가 나오는 (입자나 파동형태로) 데, 이것이 바로 방사선 이다.
확률론적으로 미미하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로부터 받게 되는 피해가 적지 않다는 믿음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로 들을 수도 없으며, 냄새도 없고, 맛도 없는 방사선과 한 묶음인 원자력은 지금 많은 홀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넘겨짚고 있는데, 그것이 틀린 것이었으면 좋겠다.
원자력공학을 공부하고 대학 졸업 후에 원자력분야 연구소에서 정년을 마친 다음 지금도 원자력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대, 요즈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원자력에 대하여 좋지 않게 생각하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것 중에서 나쁜 특성은 하나도 없고 좋은 특성만을 지닌 것이 과연 있는지를 더듬어 보았다.
사람들은 잡초를 별다른 쓰임새가 없는 천덕꾸러기로 다룬다. 게다가 잡초는 번식력도 왕성해 농사짓는데 있어서 재배중인 작물의 영양소를 빼앗는 것은 물론 생존까지 방해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농부들은 제거해야 할 주적취급 (主敵取扱) 을 한다. 하지만 잡초는 뿌리를 깊이 내리기 때문에 땅속 깊은 곳에서 영양분을 퍼 올리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땅을 섬유 화 시켜 표토 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기후가 건조한 미국 텍사스의 한 과수원에서는 잡초 (雜草) 때문에 골머리를 앓자 주변 잡초의 씨를 말려버렸다. 그랬더니 극심한 토양침식과 모래바람으로 몇 년 치 농사를 망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근처 농원에서 과수 사이에 잡초를 키운다고 한다.
중국 대약진운동 때, 사람이 주식으로 삼는 곡식의 낱알을 쪼아 먹는 참새를 해로운 새로 규정하고 소탕했다. 이로 인해 천적 (天敵) 이 사라지고 먹이사 슬이 깨지자 해충이 창궐하게 됐으며 흉년과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기에 대해 “인간을 귀찮게 하고 몹쓸 전염병을 옮기는 백해무익한 곤충”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모기를 아애 지구상에서 멸종시키자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에 도움을 주고 있는 모기들을 멸종시킨다 면, 모기를 먹이로 삼았던 먹이사슬 포식자는 먹이를 잃게 돼 큰 혼란에 빠질 것이고 모기를 꽃가루 매개자로 삼았던 식물들 역시 생식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밖에 파리, 쥐, 하루살이, 비둘기, 매미, 바퀴벌레 등도 하나같이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낮과 밤이 따라다니듯이 원자력도 좋은 특성·나쁜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현상이다.
이런 정·반현상 (正·反現象) 을 함께 활용한 한 가지 실례 (實例) 는 바로 실용화된 핵 분열형 원자력발전로다. 중성자를 잘 잡아먹지 않는 재료인 지르코늄을 핵연료피복재로 사용하고 중성자를 잘 잡아먹는 특성을 가진 보론, 카드 뮴, 하프늄 및 인듐 등을 핵연료 근처에 자리 잡게 하여 원자로출력을 조절하는데 쓰고 있다. 현재 연구·개발 중인 고열 (高熱, 플라스마 생성용) ·고냉 (高冷, 영의
전기저항용) 을 활용하는 것이 핵융합발전로다.
앞서 논의한 것을 유추해보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일찍이 세종대왕은 ‘인유일능 (人有一能) ’이라 모든 사람은 한 가지 재능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달리 풀이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나름대로 쓸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연방사선, 즉 “지구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 방사성물질, 우주방사선이 대기 및 지구상 물질과의 핵반응으로 만든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과 더불어 우주방사선”을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 들은 물론 지금의 우리들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자연방사성물질과 공기호흡 및 매일 먹는 음식물을 통해 들어온 자연방사성물질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방사성물질’로도 불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자연방사선량률이 높은 지역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 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방사선량을 받고 있으나 역학조사결과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암 등을 포함한 질병발병률이 대조지역, 즉 “자연방사선량률이 낮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질병발병률 보다 결코 높지 않다는 시실이 밝혀졌다. 방사선과학자들은 유해한 물질이라도 소량이면 인체에 자극을 주어 오히려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을 ‘호메시스 (hormesis) ’라 말하는 것처럼 방사선도 저준위선량을 받으면 인체에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 이런 현상을 방사선 호메시스 (radiation hormesis) 라고 한다.
비록 10여만 년 관리해야만 하는 방사성폐기물이 부산물로 생기고 그로부터 방사선이 나올지라도 그것을 잘 관리하면 “우리생활에 이용하는 것이 좋다.”라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원자력을 보듬어주었으면 한다.
대신 우리 원자력 계는 “쇠는 맞으면서 더 강해진다.”고 하는 것처럼 작금의 상황이 어렵지만 원자력의 실상을 많은 분들이 알고 지지해 줄때까지 끈기 있게 참으면서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을준 것에 감사해야 하겠다. 그리고 부드러운 물결이 바닷가의 조약돌을 둥글게 만드는 것과 같이 유능제강 (柔能制剛) 의 이치를 되새겨봄이 어떨까 싶다.
끝으로 졸저의 기술내용 중 상당부분은 덕산 김덕권 칼럼에서 발췌 또는 인용했음을 밝히며 그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그리고 본서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자극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대덕원자력포럼의 회원들께, 특히 내용의 세심한 검토와 편집을 도와주신 민덕기 (閔德基) 회원에게 감사를 드린다. 되돌아보니 삶이라는게, 하루하루 빚지며 사는 것이었다. 나라에, 사회 에, 주위의 여러분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저의 가족에게도.... 항상 따듯한 배려 잊지 않을 것을 새삼 다짐한다.
2019. 10.
노 성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