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외면 받고 있지만, 그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외면 받기 마련이다. 시 역시 이러한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시집 출판이 적은 편이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는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문학이다. 중국의 시경, 호메로스의 서사시, 구약성경의 시편 등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시는 압축적인 언어로 인간의 정서를 간결하게, 그러나 풍부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시는 아직도 그 역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정서가 메말라가는 이 때, 시 한 편이 인간의 메마른 정서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 이 책은 시의 이러한 기능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 저자서문 ]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라고 해도 시가 갖는 본연의 문학적 정체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는 여전히 인간의 심연에 깃든 정신과 정서를 가장 순도 높은 언어로 형상화하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생 장르인 영화가 발달한다고 하여, 드라마가 인기 있다고 하여, 시가 시대적합성이나 자기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벚나무가 당장 화려하다고 그 주변의 장미 넝쿨을 모두 잘라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다른 문화종이나 예술종이 일시적으로 유행한다고 하여 시의 유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는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예술보다도 인간 영혼의 가장 깊고 높은 곳까지 다가갈 수 있는 최고(最高/最古)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시는 또한 인간의 가장 민감한 감각과 직관, 상상을 통해 진리의 세계를 현현해 주는 대표적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영화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 감동을 전해 주는 작품에 대개 시적 서정이나 감각이 무르녹아 있지 않은가? 이것은 분명 시가 모든 예술의 근간이 되는 기초적, 메타적 특성을 지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