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고요의 집』은 아이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에 대한 공포심을 현실감 있게 시각화했다. 고요는 자신의 마음속 어둠에 살고 있는 ‘망토 마왕"에게 생각과 감정을 통제당하며 본래 자기 모습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다채롭고도 파국적인 상황들 속에서 고요의 내면에 각성이 일어난다. 고요의 꿈속 어딘가에 깊이 감춰져 있던 작은 빛이 고요의 눈앞에 나타남으로 인해, 일생일대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다.
두려움에 대하여.
이 작품은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른이 되면서 이런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부정되고 숨겨진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그리는 아이의 고민은 가볍고 순한 것으로 묘사되고는 한다. 하지만 『고요의 집』은 아이들이 가지는 근원적 불안을 다양한 상황 속에 대입하면서 고스란히 날 것으로 꺼내 보여 준다. 이요 작가는 모두가 외면하고 망각해 버린 두려움과 공포를 생생하게 간직한 채 그것을 시각화하여, 독자가 아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직면하게 만든다.
틀림에서 다름으로.
“고요, 네가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어?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마. ‘춤추는 왕관’이 시키는 대로만 춤춰.” “왜냐하면… 난 맞고, 넌 틀리니까.” 미디어나 사회가 정의하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어른들이 요구하는 완벽한 모습에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좌절하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타고난 기질을 부정당하거나 혹은 자기 본연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채, 착하지만 공허한 어른으로 자라고 만다. 맞고 틀리고의 기준은 뭘까? 윤리적, 도덕적, 사회적 관점의 맞고 틀림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외의 맞고 틀림은 다분히 개인적, 주관적이다. 마치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무지개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본연의 색을 찾고 그 색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고요의 집』은 은유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 틀리지 않았다고 말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주인공 ‘고요’에게 어둠은 두려움 그 자체다. 마음껏 불을 켤 수도 없는 집 밖 세상의 밤은 더욱 두렵다. 게다가 고요의 마음속 어둠의 세계에는 하얗고 긴 망토를 입은 망토 마왕이 살고 있다. 망토 마왕의 ‘춤추는 감옥’에서 그의 황금빛 ‘춤추는 왕관"을 쓰고 그가 조종하는 대로 그의 춤을 추면, 넘어지지도 수치를 당하지도 않을 거라고 망토 마왕은 고요에게 약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요는 실패와 수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어둠의 세상 속 망토 마왕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춤이 아닌 망토 마왕의 춤을 추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빛과 어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자, 동시에 자신을 가두는 ‘감옥’인 ‘집" 안에 머물기로 말이다. 어쩌면 고요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작은 빛 하나만 있다면.
망토 마왕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 있다. 그러나 고요의 무의식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작은 빛’ 하나가 망토 마왕의 춤을 추고 있는 고요의 눈앞에 나타난다. 바로 그때, 고요의 내면은 각성이 일어나 비로소 고요는 ‘춤추는 감옥"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고요 내면의 어둠이 깨지기 시작한다. 마음속 ‘작은 빛’의 힘은 실로 막강했다. 우리의 마음속 ‘작은 빛’은 어디에 감춰져 있을까? 그 빛을 발견하고, 망토 마왕의 춤추는 감옥에서 도망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기를. 그렇게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독창적인 한국화 기법과 콜라주의 만남 『고요의 집』
이요 작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순지 세 겹을 합하여 두께와 질감을 높인 ‘삼합 장지’에 먹으로 칠해 먹이 종이에 스며들고 번지는 효과를 이용하여 독특한 작품을 완성했다. 이요 작가의 작품 『고요의 집』의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강한 힘을 내뿜는다. 흑백이라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톤 안에서 작가는 검정의 미묘한 색 차이들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표현한다. 켜켜이 쌓인 섬세한 붓 터치들과 연필의 선들이 한데 모여 『고요의 집』을 더욱 밀도 있고 견고하게 만든다.
한국화 기법과 연필 소묘를 접목하여 그린 주인공 ‘고요"의 인물 표현은 마치 살아있는 듯 다양한 표정과 입체감으로, 생동감 있는 숨결을 내뿜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요의 머리카락 표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아주 가는 붓인 세필에 먹물을 묻혀 한 올 한 올 장인 정신으로 쌓아 올려 그려낸 머리카락 또한 한국화 기법이다. 그렇게 그려낸 고요의 머리카락들이 주인공 고요를 더욱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준다.
캄캄한 꿈속, 마음속 어둠 그리고 캄캄한 밤하늘은 한 번 칠하고 만 평면적 ‘검은색’이 아니다. 칠하고 말리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두고 겹겹이 쌓아 올려 인내로 만들어내는 그림인 ‘채색화’의 기법으로 어둠을 표현했다. 그렇게 그려진 어둠은 그 깊이감과 공간감이 마치 밤하늘을 보는 듯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책 속의 모든 그림은 배경과 주인공들 그리고 사물들이 각각 다른 장지에 그려져 콜라주를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됐다. 그렇게 한국화와 콜라주 기법이 결합된 방식으로 구상나무, 주인공의 두툼한 겉옷, 춤추는 왕관 등 거의 모든 것을 입체감 있게 표현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외에도 손잡이가 없는 문,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고요의 머리 모양, 고요의 머리핀, 페페가 조금 자란 모습 등을 세밀하게 연출하여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발견하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