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예술의 혁신적인 융합
자연과 인공,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독보적 작품 세계
AI의 도래가 불러일으킨 디지털 시대의 새벽에, 과연 예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회화, 조각, 사진, 뉴미디어의 융합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대미술에서 이진준의 작업은 독보적이다. 과학기술과 예술을 융합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작가는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혁신적인 예술 접근 방식을 선보인다. 현대 신경과학의 뉴로이미징(Neuroimaging) 기법, AI 알고리즘과 NASA 지구 관측 데이터, 데이터 음성화 기술을 통한 사운드 아트, 모션 캡쳐 등 각종 3D 그래픽 기술 등을 적용한 그의 작품은 예술 표현의 기존 규범에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잠재력을 암시한다. 예술과 기술의 창조적 결합을 통해 작품에 깊이를 더하며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공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이로써 예술과 기술이 더 이상 분리된 것이 아니라 단일한 이해를 추구하고 상호 보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예술을 “시각을 넘어 총체적인 경험의 영역”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관객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작품을 함께 완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관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이 시각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랙티브 아트’와 같은 차원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관객의 몸과 마음을 건드려 깊은 울림을 창조하고 관객이 스스로 성찰하게끔 한다. 그리하여 영상, 설치,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 문학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그의 작품은 미술이라는 장르를 넘어 무용, 음악, 연극 등 공연예술로의 확장을 꿈꾼다.
자연과 인공, 예술과 기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서로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영역의 통합을 시도하며 ‘뉴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는, 보통의 미래주의자들과는 달리 기계미학을 신봉하거나 무조건 최첨단의 기술을 따라가며 작업하지 않는다. 미디어 작품을 진취적이거나 희망적인, 그래서 다소 계몽적인 선전에 이용하려는 사례들을 경계하며, 오히려 휴머니즘에서 벗어나지 않는 미디어 아트를 추구한다. 과거, 현재, 미래와 유리된 채 예술가 개인의 감성만을 드러내는 작업을 지양하는 그는 역사에 대한 망각, 세계의 갈등, 기술에 의한 인간 소외 등 세상의 불합리함과 불균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현대 미술가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자연과 예술 그리고 기술의 조화로운 융합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 세계는 곧 현대미술의 현주소이자 미래와 다름없다. 작가 이진준의 20년 작업을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은 그리하여 한 작가의 개인적 서사를 넘어 현대미술의 맥락을 짚는 우리 시대의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