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최근 발표된 통번역학 연구 중 기존 학계의 시각 및 접근 방식에 의문점을 제기하거나,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분야를 다루거나,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한 ‘새로운 연구’ 중 통번역학에 미치는 이론적·실용적 영향력이 큰 논문을 엄선하여 모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 논문은 지금까지 통번역학에서 논의되어 온 다양한 연구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이를 넘어 통번역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및 포함하여야 할 학문적 방법론적 대상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실용학문 및 기술로서의 통번역에 익숙한 통번역 전공생 및 통번역 실무자에게 학문으로서의 통번역학을 접할 수 있는 훌륭한 소개서가 될 것이다. 통번역 실무에 종사하면서 이론 및 학문으로서의 통번역학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을 가지고 있는 실무자에서부터 통번역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통번역학 석·박사과정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예비 통번역 학자, 현재 통번역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 및 통번역을 지도하고 있는 교강사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독자층은 다양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통번역학이 어떠한 주제 및 대상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며, 이를 위해 어떠한 연구방법론들이 활용되는지, 인접 학문들과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며,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는지, 통번역학의 특성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다양한 통번역학 연구를 이론관련 연구, 연구 방법론 상 주목할 만한 연구, 실증적 연구, 언어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연구, 문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연구로 분류하여 소개함으로써 개별 연구가 가지는 독자적인 연구 결과 및 의의와 더불어 통번역학 전체 맥락에서 각 연구가 지니는 의의 또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통번역학계의 권위자인 Y. 갬비어·M. 슐레징거·R. 스톨체 세 편집인이 엄선한 통번역학의 최신 대표 연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발간사]
1960년대 캣포드(J. C. Catford)와 니다(E. Nida) 이후 통역학을 포괄하는 번역학은 현대적 본격 학문 분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캣포드의 ‘언어학적 접근’과 니다의 성서번역을 위한 ‘소통효과중심’의 접근에 이어 ‘문화전환’(cultural turn)과 ‘맥락전환’(contextual turn)의 패러다임 전환을 거치면서 번역학은 학제적 성격(interdisciplinarity)을 더욱더 공고히 하게 되었다.
번역학이 대표적인 학제적 학문분야인 것은 연구대상인 문제와 현상의 설명을 위해 가져오는 이론 틀(frameworks)과 연구방법론(research methodology)의 다양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번역학은 번역과정과 번역결과물을 모두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번역사의 ‘블랙박스’ 안에서 번역행위를 둘러싸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수한 의사결정 과정과 그 과정에 작용하는 다양한 변수들을 설명하는 한편 이들 작용의 가시적 구현체로서의 번역결과물을 모두 다룬다. 이렇다 보니 번역사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사고발화법(Think-Aloud Protocol),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기법), 통계처리를 포함하는 코퍼스 분석, 담화분석 및 기능문법 등 다양한 인접학문분야의 연구성과와 분석도구를 차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번역학이 언제까지나 학제성에 만족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번역학의 학제성은 그동안 어쩌면 번역학의 일방적 ‘짝사랑’이었을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프랑스 번역학자 질(D. Gile)의 이야기는 이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번역학이] 타 학문분야와 맺은 파트너십은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이어서, [우월한] 지위, 파워, 재정능력 및 실제 리서치 능력은 일반적으로 파트너 관계에 있는 학문분야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학제성이 패러다임의 확산을 도와 결과적으로 자율적인 학문분야로서의 통번역 연구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있다.
(질 2004: 29)
질의 이야기는 학제성을 장점으로 부각시켜온 번역학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곱씹어볼 만하다. 핌(A. Pym) 역시 대표적 번역학 학술지의 하나인 『Target 』의 역할을 돌아보면서, 번역학이 인접 학문분야의 연구성과를 도입해오고 있는 반면, 정작 번역학의 연구성과가 인접 학문분야로 전파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쌍방향의 균형 잡힌 호혜적 지적(知的) 파트너십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번역학을 연구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번역학 자체의 고유연구영역을 더 분명히 규정하는 한편 학문적 엄격성(academic rigor)을 갖춘 연구방법론을 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번역학의 다양한 연구 성과와 새롭게 개척되는 연구방법론을 선도적으로 꾸준히 소개해온 존 벤자민스(John Benjamins) 출판사의 통번역 총서의 기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번역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이 총서 가운데 최소한 한두 권 이상은 읽어보았을 정도로 번역학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존 벤자민스 통번역 총서』 번역작업에 누구보다도 바쁘신 교수연구자들이 다수 자원하신 것은 바로 이 총서에 대한 지적 향수(知的 鄕愁) 같은 것이 작용한 때문은 아닐지.
국내 최초의 전문통번역학 연구단체인 한국통역번역학회(KSCI)가 이번에 『존 벤자민스 통번역 총서』가운데 대표적인 업적들을 선별하여 번역 출간하게 된 것은 특별히 의미가 크다. 1998년 학회 창립 이래 국내 최초의 한국연구재단 등재지『통역과 번역』, 국제전문학술지 『FORUM: International Journal of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을 발행해오면서 국내외 통번역학의 발전과 소통에 이바지해온 본 학회의 통번역총서 번역 발간이 우리말로 쓰인 번역학 자료에 목말라해 온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경기침체로 출판계 전망이 장밋빛이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뜻있는 기획출판일수록 대학 출판부에서 맡아야 한다.”며 선뜻 『존 벤자민스 통번역 총서』 출판 추진에 합의해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특히 권원순 출판부장님과 안상덕 팀장님, 신선호 과장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학회를 대표하여 출간을 총괄해주신 김대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님과 실무조정을 도와준 학회 교수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4년 4월 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부 교수
한국통역번역학회 회장
정호정
[머리말]
2004년 9월 29일과 30일 리스본에는 이백여 명 이상의 참가자가 모여 통번역학의 현 방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때 개최된 제4차 유럽 번역총회(EST)의 주최측은 논문 공모 시 “그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가정, 편견, 및 타 학문에서 빌어온 근거, 믿음, 주장 등을 점검하고 확인해볼 시기가 온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를 통해 제4차 총회의 주제가 “연구 문제점과 향후 방향(Doubts and Directions)”으로 정해졌다. 물론 본 학회에서 발표된 연구가(총 6개의 패널에 40건의 포스터와 140건 이상의 논문이 접수되었음) 모두 같은 주제, 동일한 연구 문제, 동일한 개념이나 방법론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다양성이야말로 이러한 학술총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니까 말이다.
학술총회 때 발표된 연구 중 50여 편이 논문으로 제출되었다. 40여 명의 심사위원의 도움으로 이 중 26편을 최종 선별하게 되었다. 최종 26편을 선정하는데 적용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연구의 접근 방식, 연구 주제의 독창성, 논제/데이터의 질, 논문의 구성. 이들 기준을 통해 선별한 논문은 면밀한 검토를 통해 본서에 구성된 바와 같이 다섯 부문으로 크게 분류되었다. 그 중 영어 이외의 언어로 작성된 논문을 제외한 20편이 본 한국어 번역본에 포함되었다.
제1부에 소개된 논문은 모두 이론과 관련된 연구이다. 체스터만(Chesterman)은 소위 특수소(unique item)가설이라 불리는 이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특수소 가설 연구에 활용되는 방법론에 대해 문제점을 몇 가지 제기한다. 스테코니(Stecconi)와 괴페리히(G?pferich)는 번역학이 한편으로는 기호학을 다른 한편으로는 전달학(Transfer Studies)을 수용함으로써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두 저자는 번역학의 범위 확대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며 현 번역학의 연구 범위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번역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 저자는 논문에서 번역 사건, 등가, 텍스트 변형, 품질 평가 등에 대한 개념을 다룬다. 알베즈(Alves)와 곤칼베스(Gon?alves)가 쓴 네 번째 논문은 관련성 이론과(Relevance Theory) 연결주의(Connectionism)에 근거하여 번역 능력을 규정하고자 한다. 위의 논문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특수소, 보편소, 번역학의 범위, 다학제적(multidisciplinarity) 특성, 능력, 인지 모델? 모두 상당 기간 통번역학의 연구 대상으로 연구됐으며 보다 심도있는 개념적 방법론적 분석을 수반한다 할 수 있다.
제2부에는 4편의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루는 내용은 모두 다르나 연구 방법론의 개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세루야(Seruya)가 이끄는 포르투갈 연구팀은 포르투갈의 문학번역의 역사 정립을 위해 애쓴다. 역사에 있어 대리인(agent)과 건축사(architect)는 누구인가? 이들은 어떠한 재료를 필요로 하는가? 여기서도 역시 학제성(interdisciplinarity)과 번역에 대한 각기 다른 개념으로 인해 복잡성이 더해진다. 그랜트(Grant)와 메제이(Mezei)의 연구는 캐나다의 문학번역 연구에 대한 정보 보급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구축한 웹 기반의 참고문헌 목록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제어 구조, 다국어로 구성된 참고 문헌, 데이터베이스 업데이트 등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관해 기술함으로써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이 ‘바퀴를 다시 개발하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한다. 리스쿠(Risku)는 기술이 우리의 업무 환경에서 가지는 핵심적 역할을 인식한 가운데 현재 가용한 도구를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사용하는 것이 번역에 가장 유용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 효율성, 창의성, 품질이 번역사의 주요 요건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마지막 논문인 힐드(Hild)의 연구는 동시통역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적 연구에 엄격성(rigour) 확보하기 위한 4가지 방안으로 다각화(triangulation), 과업(task)의 대표성 측정, 샘플 내부 일관성 확보, 및 데이터 관리를 제시한다. 제2부에 소개된 4편의 연구는 모두 연구 대상을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정의하는 것의 중요성과, 연구 절차의 적합성, 연구 맥락을 고려한 결과 해석과 적절한 의의 부여를 강조한다.
여섯 편의 논문이 포함된 제3부는 실증적 연구를 다룬다. 쿤즐리(K?nzli)는 열 명의 전문 번역사가 프랑스어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법률 문서를 다시 수정하면서 어떠한 부분을 수정하는지에 대해 기술하며 최종 수정본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도 함께 제공한다. 알브스타드(Alvstad)는 교육적 측면에서 번역문과 출발어 텍스트의 정독을 통해 대학생들은 문학 읽기를 동적 과정으로 더욱 잘 인식할 수 있게 됨을 보여준다. 두 편의 연구 모두 번역물 생산 과정에 있어 중요하나 흔히 간과되기 쉬운 단계를 재조명한다. 끼아로(Chiaro)와 안토니니(Antonini)의 다음 두 편의 논문은 이탈리아 관객이 더빙된 영상물을 볼 때 문화적 지시 (cultural reference)와 구술 유머(verbally expressed humour)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 인식 연구에는 t-테스트와 온라인 설문지가 주요 연구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영상 번역의 한 지류인 오페라 자막 번역 분야에 대한 마테오(Mateo)의 연구는 어떠한 번역전략이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같은 언어로 번역된 오페라 자막 간에도 현격히 차이점이 드러남을 보여준다. 담(H. Dam)은 통역사의 순차 통역 노트에서 효율성과 비효율성을 나타내는 특징들을 규명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통역사 다섯 명의 스페인어-덴마크어 통역 텍스트와 노트 내용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검증한다.
제4부에는 언어학적 접근을 취한 네 편의 연구가 포함되었다. 이들 연구를 통해 언어학과 통번역학과의 다양한 접점에서의 연관성이 다각도로 펼쳐진다. 여기에는 영어와 핀란드어 신문에 사용된 평가 수식어가 붙은 명사구의 사용 빈도, 기능 및 효과를 통한 이데올로기 연구(푸르티넨), 스페인어에서 덴마크어로 번역된 도착어 텍스트에 명확히 나타난 의미론적 관계의 유추와 전달 연구(덴버), 영어-스페인어 번역의 ‘양식(modality)-필요성(necessity)’ 필드에 나타난 기술 번역 연구(DTS), 코퍼스 기반 연구와 대조 분석 연구간의 교차점 연구(라바단), 전치사와 위치 부사를 사용하여 덴마크어와 이탈리아어 간의 공간 관계를 해석한 연구(얀센)가 포함된다. 이들 네 편의 논문은 모두 방법론적 문제와 개념적 문제를 다룸으로써 번역사는 조작 전략(manipulative strategy)을 사용하고 복잡한 의사결정을 내리며 항상 자신이 작업하는 언어 쌍에 대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제5부에는 문학적 접근방식을 택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각 연구가 다루는 주제와 연구 방식에선 다양성을 볼 수 있다. 물리간(Mulligan)의 연구에서는 후기 식민지 시대의 여류 여행작가들이 자신의 텍스트안에서 ‘타문화’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 작가가 사용하는 텍스트적 기법은 독자에게 수사적(rhetorical)이자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미친다. 팔로포스키(Paloposki)의 연구는 번역사의 개인적 주체성과 집단 규범간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19세기의 한 핀란드 번역사가 자신의 번역 조건을 (번역할 책의 선정에서부터 출발어 버전 선정과 번역 전략 및 책의 디자인과 번역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얼마만큼 협상할 수 있었는지를 연구한다.
위의 연구에서 사용된 주제, 접근방식과 연구 방법론은 겉보기에는 잘 정립된 것 같은,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패러다임과 개념을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이는 또한 우리의 연구 대상은 다른 연구분야와 접점을 가지며 이 접점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연구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열어준다.
이 책이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학술총회 주관자들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시간과 노력, 전문성을 아낌없이 쏟아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모든 논문 저자와 심사자께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최종 원고를 힘들여 끝까지 검토해준 앤드류 체스터만 교수께 감사드린다.
편집위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