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도여성, 신화와 현실』은 인도여성에 대한 국내 학술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나온 최초의 학술저서이다. 이 책은 인도의 전통적 여성상이 인도여성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 함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전통적 여성상이 변화하면서도 지속되고 있는 양상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도문화의 이중적 여성상과 그것이 반영되어 있는 전통적 사회, 문화 현상과 규범, 근대 이후 인도사회의 변화에 따른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반응의 한 형태로 근래에 부상해온 힌두근본주의 운동이 인도여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세 명의 공동연구자에 의해 6년여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연구 결과물이다. 인류학, 종교학, 문학 등의 학제 간 공동연구를 통하여 오늘날 인도여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내려 했고 연계된 주제들을 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이해와 분석의 깊이를 더 했다. 또 문헌자료연구와 현지조사연구를 병행시킴으로써 실제적인 이해와 분석을 시도한 점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현지경험이 많은 인도전문가들이 현지조사를 통해 인도여성의 삶과 제반문제들을 인도의 사회 문화적인 콘텍스트 안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려 한 점은 비서구권에 서구적 접근법을 단순히 적용시킨 연구들과는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이 책이 열악한 연구 여건 아래에서 나름대로 독창적인 주제와 구성을 가지고 인도 여성의 삶과 현 이슈를 이해하려 시도한 점을 높이 사고 싶고 앞으로 나올 인도여성 관련 연구들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책의 내용
전통을 보존하려는 경향이 강한 인도에서 근대 이후 정치, 사회, 경제 등 삶의 제반영역에 쳐 변화의 물결이 일면서 여성의 삶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독립 후에 국가의 건립과 함께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면서 여성의 법적 지위가 높아졌고 1990년대부터 채택하고 있는 신경제정책은 물질적 축적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줌과 동시에 여성교육에 대한 인식 역시 급속히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주로 법적인 차원의 지위향상이나 일부 상층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뿐 대다수 여성들의 삶은 전통 관념과 관행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결혼지참금을 둘러싼 신부살해 사건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 현실은 그 한 예이다. 따라서 현 인도여성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려면 이를 규정해온 전통적 여성관념과 그것의 사회, 문화적 구조와의 관련성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 책이 Ⅰ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인도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관념과 태도이다.
인도의 전통문화는 여성을 한편으로는 부정(不淨)하고 나약한 남성종속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힘의 소유자이자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해 왔다. Ⅰ부에서는 여성에 대한 인도문화의 이러한 이중적 관념과 태도가 사회구조와 문화현상 속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문헌자료와 현지조사연구를 토대로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종교의례 및 관행과 여신신앙, 인도 서사문학의 여성인물 그리고 친족제도와 남매관계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이중적 여성관념이 인도인들의 의식과 실제 삶에 미쳐온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인도에서 독립적 여성상의 문화적 토대가 폭넓게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화와 관습화를 통하여 여성의 종속적 지위와 역할을 규정해 온 것은 남성종속적인 여성관념임을 밝히고 있다.
Ⅰ부와 Ⅲ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II부에서는 근대 이후 변화된 여성의 삶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고 있다. 먼저 인도 여성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을 다루고 이어서 인도의 사회와 정치, 경제적 상황 등이 변화하면서 인도여성의 삶 역시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러한 변화는 전통과 진보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지속 속의 변화’ 임을 밝히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도시마을 무니르까 여성들의 삶에 대한 현지조사와 1990년대 여성중심 소설인 『나는 달을 원한다』의 여성인물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근대 이후 지속되어온 그리고 특히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어온 인도사회의 전반적 인 변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에 대한 보수주의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 힌두근본주의 운동의 등장과 성장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새로운 현상이 오늘날 인도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Ⅲ부가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오늘날 인도에서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따라 여성에 대한 전통적 사고가 도전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조짐 속에서도 여성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 태도는 인도 여성들의 삶에 여전히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강한 가부장적 성격을 띠는 힌두근본주의 운동의 영향력 확대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인도의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힌두근본주의 운동에 참여해 여성단체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수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 인도의 지도적 여성들이 전통과 진보라는 양 집단으로 나뉘어 이념적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어 오늘날 인도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위와 같은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Ⅲ부에서는 먼저 힌두근본주의의 등장배경 및 성격과 급부상 요인을 분석하고 이어서 힌두근본주의가 인도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힌두근본주의 운동의 정체성전략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힌두근본주의 세력이 힌두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진행시키고 있는 전통적 여성정체성의 재확립시도와 이를 위해 사용되는 사회문화적 전략 등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여성정체성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활용해온 여러 매체 중 하나인 TV드라마시리즈를,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가부장적 여성관행과 관습들을 부활시키려는 구체적인 사례와 전략들을 다루고 있다.
이어서 다루는 내용은 현재 인도에서 강력한 종교 세력이자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힌두근본주의 운동에 대해 인도여성계가 보여주고 있는 상반되는 반응이다. 진보진영의 여성들이 이 운동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대응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에 우익진영의 여성들은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이 양 입장과 반응을 현지조사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인도에서 힌두근본주의 운동의 확산이 인도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힌두근본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오늘날 인도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갈등과 딜레마 곧 여성의 정체성과 지향점의 균열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최근 전통부활주의 또는 극우주의가 등장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 지역의 상황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나 자료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