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에서 전해지고 있는 신화, 전설, 민담작품들을 수집하여 각 내용에 대해 간략한 설명과 필자들의 견해를 덧붙였다. 이들 신화들을 통해 우리는 동유럽 민족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세계관, 문화의 전반에 녹아있는 종교적 특징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의 신화들과의 비교를 통해 같고 다른 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 책은 학술연구의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동유럽 민족들의 설화, 신화, 신비한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머리말]
얼마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신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으며 활발한 소개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문화 공동체의 신화들을 소개하는 서적들이 봇물이 터지듯 출간되고 있다. 또한, 신화가 지니는 상징과 의미들을 밝혀내려는 연구들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의 신화 서적이나 연구서들은 거의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북구 신화, 인도 신화, 이집트 신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동북아 신화 등에 국한되어 있으며, 동유럽의 신화에 대한 소개나 연구는 아직 초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은 동유럽이 우리와는 거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동유럽의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오랜 크리스트교 국가들이었기에 민간전승의 신화들이 거의 성서의 내용들에 영향을 받으며 사라졌으며, 그나마 과거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신화 자체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유럽에서는 과거 공산주의 기간 동안 신화나 전설 등의 구비문학에 관한 연구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예를 들어 적과 투쟁하는 등의 영웅적 행위를 한 농부나 산적들에 관한 전설들이 과장되어진 채 소개 되었고, 열심히 일한 자가 반드시 성공해 높은 지위에 오른다는 등의 내용을 지닌 창작물들이 억지로 짜 맞추어져서 신화나 전설로 위장되기도 하였으며, 상대적으로 창세신화같이 신과 우주에 관한 신화들은 허황된 흥미위주의 이야기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길에 접어든지 20여년이 넘게 지난 현재, 동유럽의 구비문학 연구자들이나 신화학자들은 앞 다투어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발표하고 있으며, 과거 사회주의 시절의 거짓 신화나 전설들을 솎아내고 시골 마을에서 채록한 순수한 전승 신화들만을 수록한 신화집들을 줄이어 발간하고 있다. 이 책을 공동 집필한 5인의 저자들은 바로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동유럽 각국에서 가장 최근에 발간된 신화집들과 신화 연구의 결과물들을 참고자료로 적극 활용하였다.
앞서 밝혔듯이, 한국에는 지금까지 동유럽의 신화가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동유럽에는 특별히 다루어 볼 만한 가치를 가지는 신화가 거의 없다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가 없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공동체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현재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의 신화들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의 신화들처럼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많은 신들이 등장하여 복잡한 사건들을 전개하지는 않는다. 이들 신들보다는 작아보이고 초라해 보이는 잡귀나 정령들이 등장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각 문화 공동체의 동질성을 느끼게 해주고 사회적 금기나 윤리적 장려 사항들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이다. 비록 내용적으로 뭔가 소박해 보이고 사사로워 보이지만 동유럽의 신화들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학술연구의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동유럽 민족들의 설화, 신화, 신비한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있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에서 전해지고 있는 신화, 전설, 민담작품들을 각 언어의 전공자들이 수집하여 각 내용에 대해 간략한 설명과 필자들의 견해를 덧붙였다. 이들 신화들을 통해 우리는 동유럽 민족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세계관, 문화의 전반에 녹아있는 종교적 특징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의 신화들과의 비교를 통해 같고 다른 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신화의 내용에 대한 설명에는 학술적인 자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될 일반 독자들을 고려하여 딱딱한 각주로 처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충분치 못한 주해를 보완하기 위해 저술에 이용한 원전을 참고문헌에 제시했다.
신화와 전설, 민담작품들을 국가별로 제시하다보니 그 각각의 작품수를 일관되게 꾸미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에 대한 자족 혹은 변명으로, 같은 동유럽권에 속해 있는 민족들이라 할지라도 중세보편종교의 영향이 크고 작음에 따라서 신화들이 발전하는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
발칸유럽에 속하는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루마니아는 보편종교가 전파되고 수용되기 이전부터 민간에서 믿어왔던 민간신앙의 영향이 신화를 포함한 구비문학과 문화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 지역 중 특히 루마니아나 세르비아의 신화들은 크리스트교의 영향이 보이기는 하지만 성서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창세신화가 발견되기도 하고 일상에 관여하는 많은 정령과 악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영향권 하에 놓여있었던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같은 중부유럽 민족들 사이에 전승되는 신화들의 경우에는 민간신앙의 영향보다는 가톨릭의 영향이 훨씬 크다. 이들 지역에서는 창세 신화나 인간 기원 신화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도시건설 신화나 민족 기원 신화들이 강조된다. 더불어 발칸유럽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중세왕국을 건설했었던 세르비아 민족을 포함한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민족들은 외세와의 오랜 투쟁을 통해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영웅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내용은 이 책에 제시된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구구한 자족적 변명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들이 책의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이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될 국내에서의 동유럽 지역과 이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더불어 이 책이 갖고 있는 부족한 점들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차후 개별 국가별 신화들을 보완하여 국가별 단행본을 출판할 계획이다.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의 2007년 도서개발지원에 의해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출판과 편집을 위해 애써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