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E. 몬탈레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것이다. 저자는 몬탈레를 삶을 연구하고 그의 문학에 관한 특징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에우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 1896~1981)는 이탈리아의 시인으로 197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전통적 시형을 깨뜨리고 황폐한 현대세계의 내적 풍경을 복잡한 새 기법으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현대세계의 비참함을 읊는 동시에 거기에서 포착된 불멸의 미의 순간을 담았다고 평가된다. 20세기 이탈리아 시단의 주류인 ‘에르메티즈모(순수시)’로 군림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오징어의 뼈』(1925), 『기회』(1939), 『폭풍우와 기타』(1956)? 등이 있다.
서문
몬탈레는 내 삶 곳곳에 때로는 대동맥처럼 때로는 실핏줄처럼 퍼져있다.
1992년 파비아 대학에서 시작한 나의 유학생활은 지적 호기심과 욕구가 가장 높다는 30대를 다보내고서야 한 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공부하게 된 이탈리아의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 몬탈레와의 인연은 독특하다. 당시 이탈리아 문학연구가의 길을 시작한 나에게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가 이탈리아에서는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으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나는 오랜 시간 그를 읽고 또 읽으며 그의 문학을 이해하려고 애쓰다 지치고 쓰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심하고 도전해보아도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호두껍질을 맨손으로 깨고 그 안의 고소한 맛을 느끼기에는 좀처럼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어오면서 몬탈레의 시에 수없이 골똘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씩 감탄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와 늘 함께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안에 그가 나를 조종하는 듯한 묘한 느낌을 경험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 보기를 그가 했던 것처럼 나도 따라 하려는 나를 가끔씩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그에게 흠뻑 빠지게 된 것은 두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독특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매우 정교하게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 이해시키는 것이다. 둘째로는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이나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무기력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도 변명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평생토록 솔직하게 그 문제를 고민한 점에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두 가지 사실은 몬탈레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성인이라면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아직까지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성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몬탈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비단 몬탈레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몬탈레는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예견이 가능한 삶을 살았다. 따라서 그의 개인적 삶을 잘 이해하는 것은 그의 문학 전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몬탈레는 항상 일정한 리듬으로 삶을 살아갔다. 그의 행동에서 파격이란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소양으로 세상을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는 삶에 있어서 급작스런 변화나 격동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에게 ‘사실들, 실재하는 것들’은 모두 문학적 소재였으며 실제로 그는 그러한 대상을 표현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를 썼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본 저서에서 그의 삶에 대해 단순한 연대기적 기술보다는 청년, 중년, 장년을 보낸 제노바, 피렌체, 밀라노 시절로 구분하고 그 시절마다의 특징적 사실들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몬탈레는 평생을 한결같이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그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그가 발견한 진실 속에는 인간의 고통스런 현실이 있었으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고통으로부터의 ‘인류의 구원’을 나아가 ‘우주의 구원’을 끝없이 열망하였다. 몬탈레가 알게 된 인간의 삶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누군가로부터의 구원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몬탈레는 처음 세 편의 시집에서 이러한 부분을 강력하게 또 집중적으로 매우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표현해냈다. 후기 시로 분류되는 네 번째 시집부터는 20세기 후반의 변화된 사회현실에 맞는 주제와 형식 그리고 양식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전기 시와는 달리 후기 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매우 다양한 주제를 선택하여 친근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훨씬 더 편안하고 다정한 느낌을 준다.
인류의 구원을 끝없이 열망하던 몬탈레는 “시는 나에게 희망으로의 초대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의 이 말은 그의 시학을 한 마디로 아우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저서의 후반부에는 지금까지 발표한 몇 편의 논문을 주제별로 골라 실었다. 몬탈레가 가장 중요하게 살펴본 핵심 주제에 대한 글을 통해 그의 문학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몬탈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노벨상 위원회의 몬탈레 문학에 대한 평가 연설문과 수상자의 문학관을 이해할 수 있는 시인의 강연문을 실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께 조심스럽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책에 실은 논문들을 읽다보면 필자가 논문 발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지금 보면 논문의 이곳저곳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들도 발견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이 시간 속에서 진화하는 연구 결과의 모습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빌며 첨삭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전체적으로 좀 더 연구하고 보완하여 추후에 보다 완성도 높은 책으로 보답하리라 다짐합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제가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신 여러 은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책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온정을 기우려주신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1년 1월 25일
왕산에서
이상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