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972년 벨지움 유학 시절, “한국(Korea)”에서 왔다고 하면 그런 나라가 있느냐 하며 의아해하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독일로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서류절차를 받았는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 시절 국가의 위상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몸과 마음으로 시리게 겪었다. 이제는 한국 여권으로 세계의 가장 많은 나라를 자유로이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한국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더 이상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오래 전 드라마 “대장금”이 동아시아 전역에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더니, 최근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아시아를 넘어 중동에까지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K-POP의 한국 젊은 가수들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한류의 불을 지피더니,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로는 한국의 운동선수들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피겨, 양궁, 펜싱, 체조, 축구 부분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며 체육 역사에 새 장을 열어갔다. 여자골프에서는 이제 한국선수가 참가하지 않는다면 국제대회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며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같은 예술가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한국이 낳은 백남준, 윤이상과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문화의 세기라는 지구촌 시대에 한국의 예술가, 음악가, 연예인, 체육인 등 문화인들이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며 우리의 감성과 심성이 지구인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어 “문화콘텐츠”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고, 대학에 그것을 전공으로 연구하는 “문화콘텐츠학과”도 생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문화콘텐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대 철학과에 있으면서 2002년 대학원에 “문화콘텐츠학과”를 개설하는데 관여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는 전적으로 문화콘텐츠학에 매달려 학문으로서의 문화콘텐츠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콘텐츠와 문화철학〉, 〈문화콘텐츠학의 이해〉,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한국현대문화콘텐츠분석〉 등의 강의를 개설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문화콘텐츠를 접근하며 연구해왔다. 이 책은 이 모든 학술 활동의 최종 성과물인 셈이다.
“문화콘텐츠”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따라서 “문화콘텐츠학”이라는 학문도 한국에서 태동한 신생학문이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한국 사람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론과 학문분야에서는 아직 괄목할 만한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이 지구인들의 공감을 산다면,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삶의 문법에 맞갖은 이론적 설명과 해설이 나와야 할 시점도 되었다. 이 책에서 이를 위한 첫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이제 논의의 마당을 펼쳐놓는 셈이다. 관련된 연구자들의 생산적인 논의를 거쳐 “문화콘텐츠학”이 더욱 체계 잡힌 한국 발(發) 학문으로서 굳건히 서기를 바란다.
공동저자인 박범준 박사는 2007년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서 줄곧 함께 연구하였다. 그는 2014년 〈소통의 문화콘텐츠학 학문적 체계 연구〉라는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여 이 분야 최초의 박사학위자가 되었다. 이 책은 나의 “문화콘텐츠학의 이해”라는 강의록과 박범준 박사의 학위논문을 한 권으로 정리해서 묶은 학술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콘텐츠학의 이해”를 들으며 강의를 녹취해서 풀어 정리한 대학원생들의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의를 경청하던 학생들의 열정적인 학구력이 이 책 발간의 원동력이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 발간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서 길을 마련한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임영상 선생께도 감사한다. 출판 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외국어대에 뜻깊은 학술서라며 선뜻 발간하기로 결정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에도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16년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오두막에서 지은이를 대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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