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술을 마시는가
여성과 젠더를 중심으로 알코올을 연구한 첫 번역서
- 음주 문제는 의학적 과제가 아닌 사회적 쟁점이다
『여성과 알코올』은 여성과 젠더를 연구의 중심에 두고, 사회적 모델을 적용해 음주를 조명한 책이다. 사회적 모델은 음주의 맥락을 개인적 또는 의학적 차원을 넘어 그 사회의 문화, 차별, 배제와 같은 사회적 요인을 기초로 이해하려는 분석법이다. 사회적, 환경적인 맥락 내에서 알코올 ‘오용’ 문제를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사회학적 분석은 우리 삶의 사회적 요소와 개인 요소 사이의 연관성을 비판적으로 이해한다. 『여성과 알코올』은 음주 문제를 엄격한 의료 모델로부터 분리하여 정치ㆍ사회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이 책의 집필진은 음주 문제를 연구하는 교수부터 젠더 연구자, 사회복지사, 간호사, 상담가, 지역사회 교육 전문가, 알코올의존에서 회복한 경험이 있는 당사자까지 다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음주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남용 혹은 의존에만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음주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음주 문제를 질병으로만 보는 전통 의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코올을 주제로 하는 수많은 연구가 있지만, 여성 혹은 젠더를 중심에 두고 여성이 음주하는 이유와 방식, 여성 음주의 의미, 여성이 원하는 치료 등을 세밀하게 탐구한 연구는 많지 않다. 특히 이러한 학술서가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3부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여성의 음주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에서는 여성의 알코올 사용과 오용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초점을 두고, 정책과 실천 개발에 어떠한 함의가 도출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1장 「음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에서는 사람들이 만취한 여성이나 폭음하는 여성을 두고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찍거나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남성의 만취에 대해서는 용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음을 지적한다. 2장 「19세기 중반과 21세기의 영국, 여성 음주를 보는 시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에서는 영국 빅토리아시대와 오늘날의 젠더 가치가 과연 달라졌는지를 밝힌다. 이를 위해 19세기 중반 영국의 금주 단체에서 발행한 잡지와 전단지를, 2009~2011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음주 규제 캠페인 포스터와 비교, 분석했다. 3장 「영국 청년에게 술이란 무엇일까?: 음주문화 민족지학 연구」에서는 정부 기관과 언론, 소셜 미디어에서 젊은 여성의 음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 영국 캔터베리와 사우스 런던에서 진행한 민족지학 연구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남성이 주도하는 밤문화가 어떻게 여성에게 낙인과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지 참여 관찰한 연구를 소개한다. 남성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여성들은 여러 사회적 억압에 맞서기 위해 연대하면서도, 남성의 욕망에 부응하는 여성성을 갖추려 자신의 음주 행동과 몸을 점검하는 모습을 보인다.
2부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에서는 레즈비언 여성, 노인, 카리브계 흑인 여성 등 소수집단의 음주 경험을 둘러싼 연구를 다룬다. 6장 「나이 든 여성도 술을 마셔요」에서는 그동안 연구, 정책, 실천 영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노년기 여성의 삶에 음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하며 알코올이 가진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살펴본다. 7장 「카리브계 흑인 여성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서는 카리브계 공동체의 출산, 결혼, 장례 등 중요한 사회경제적 의례에서 알코올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본다. 블랙(black) 케이크라고도 불리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카리브계 공동체에서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며,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과 중요성도 거의 의례처럼 진행된다. 가족별로 고유의 케이크 조리법을 가지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케이크의 핵심 재료는 알코올이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카리브계 흑인 여성은 비음주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들려주는 7장은 소수민족 여성에게 알코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고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민족적 맥락을 고려한 알코올 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8장 「레즈비언 여성의 음주 이해하기: 지지와 연대의 필요성」에서는 레즈비언의 다양한 음주 패턴과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알코올 서비스는 소수자의 고통을 아는 여성에게 도움을 받는 대안적 공간임을 인식하게 한다. 9장 「음주 이면에 감춰진 아픔을 들여다봐야 한다」에서는 음주가 가정폭력이나 비극적인 개인사를 견뎌내기 위한 일종의 대처방식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자문화기술지 연구 방법을 통해 음주로 어려움을 겪는 네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9장은 가족의 역사와 일상적 삶에 술이 어떻게 새겨질 수 있는지 들려줌으로써 음주 문제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음주 안에 숨겨진 아픔과 이야기를 해석해야만 알코올과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바꿀 수 있음을 역설한다.
3부 ‘사회적 접근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다’는 음주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위한 치료 서비스에 사회적 모델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모색한다. 10장 「여성에게 적합한 치료 공간과 서비스」에서는 의사 중 일부가 여성의 음주를 ‘도덕적’ 관점으로 심판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여성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성의 음주 문제는 유독 수치심과 연결되는 특징이 있는데, 여성은 사회가 기대하는 규범에 미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수치심 때문에 치료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반대로 비심판적인 자세의 의료 전문가를 만나면 긍정적인 치료 효과가 있었다. 12장 「여성이 말하다! 여성에게 필요한 알코올 서비스」에서 여성들은 익명이 보장되고 비난받을 걱정이나 수치심을 느낄 걱정이 없는 전화 상담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고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료진과 동료 환자들의 친절과 공감이라고 했다. 여성들은 비심판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field)을 원했으며, 특히 돌봄 책임을 맡은 여성들에게는 치료 기관의 위치와 접근성도 중요했다.
이렇게 여성이 술을 마시는 맥락과 음주를 지속하는 요인은 남성과는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여성의 음주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맥락 속에서 문제를 이해하여 더 다양한 종류의 전인적인 지원과 격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음주 문제는 궁극적으로 의료적 과제라기보다 사회적 쟁점임을 깨닫게 하는 『여성과 알코올』은 중독과 정신건강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 학생, 다양한 직역의 현장 전문가, 그리고 젠더를 중심에 두고 중독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음주를 이해하는 폭넓은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