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원래 불편해야 한다.
- 언론윤리 전문가 심석태, 『불편한 언론』 출간! -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오래전부터 문제였다. 하지만 그 문제는 해결되기보다는 점점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언론이 정파성을 앞세우고, 언론 소비자들이 정파적 언론에 열광하는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우리 사회의 소통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 왜 지금, 언론 정파성 논의가 필요한가?
현재 우리 언론 상황을 보면 정치적 사건을 정리해서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과 감정을 그대로 옮겨오는 듯하다. 언론은 원래 숨기고 있는 것을 들추고 고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치인이든 시민들에게든 불편한 존재여야 한다. 정치는 언론을 정권 장악의 수단으로 삼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포기해야 한다. 언론 통제 기구들에서 정치적 여야 대리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야 대리전 구조를 민주적 통제라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은 언론의 극단적 정파화가 결국 사회 전체를 망가뜨린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깨어 있는 언론 소비와 언론 자기편 만들기를 구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언론을 포획하려는 정치 집단을 경계해야 한다. 소비자 활동을 빙자해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행태를 가려내야 한다. 사실상 정치 진영의 언론 자기편 만들기 전략은 사회 구성원 전체를 정치적 후견주의 체제에 속에 가둬놓는 전략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정권에서나 공영방송 경영진 구성을 놓고 격전이 벌어진다. 각종 언론관련 진흥 지원 기관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권도 자기가 집권했을 때 이런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데, 반대로 다른 쪽에서 이런 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강력하게 반발하는 도돌이표가 반복된다.
■ 언론이 독립적일 수 있는가?
언론업계, 언론인의 정치적 독립성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상당수 언론인은 정치적 독립성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로 해석한다. 정치적 후견주의는 숨겨진 사실이 아니다. 공영방송에 만들어진 다양한 노조는 노동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다. 언론인들은 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알지만 SNS나 방송을 통해 특정 정치인을 지니 또는 비난하는 등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이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동을 한 기자를 해고까지 하는 것에 반해 한국 언론사들은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언론인에 대해 사실상 방임하는 태도를 보인다.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이 잦은 것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언론인 집단이 이미 정치적 경향성을 보이는 것에 대한 비판은 별로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의 언론인은 스스로 정치인이기도 하고,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언론인은 관찰자, 감시자가 아니라 직접 선수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상황이 됐다.
■ 건강한 언론 생태계는 건강한 소비자가 만든다.
이런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어느 한 언론만 봐서는 도대체 객관적인 사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저널리즘의 기본 방법론을 지키는 것이 양립하기 어렵다고 인식하는 정도가 됐다. 소비자들은 정파적 입맛에 맞을수록 그 언론을 지지하고 반대 언론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이런 생태계 형성에 적극 참여한다. 정파적 그룹을 독자로 확보하면 상당한 수익이 따라온다. 포스트트루스니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니, 언론자유의 역설 등등 다양한 논리로 이런 정파적 언론 생태계를 옹호하는 학자들도 있다.
문제 해결은 언론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언론),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정치), 언론을 제 용도로 사용하는 것(소비자)이다. 언론은 자율적 통제장치를 만들고 스스로의 윤리적 원칙과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정파적 언론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부 극단적인 정파적 언론인이 전체 언론에 미치는 해악을 언론계 전체가 명확하게 지적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저널리즘적 원칙과 방법론 하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는 언론을 정권 장악의 수단으로 삼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포기해야 한다. 언론 통제 기구들에서 정치적 여야 대리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야 대리전 구조를 민주적 통제라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은 언론의 극단적 정파화가 결국 사회 전체를 망가뜨린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깨어 있는 언론 소비와 언론 자기편 만들기를 구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언론을 포획하려는 정치 집단을 경계해야 한다. 소비자 활동을 빙자해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행태를 가려내야 한다. 진정한 언론 소비자 교육, 제대로 된 뉴스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공통의 사실 파악 기능을 상실한 사회는 공론장이 형성될 여지 자체가 없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