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과 노비의 재산 싸움부터 고리대 놓는 양반 마님까지
돈 때문에 ‘척’진 사람들의 소송의 기술
1554년 지금의 전라북도 장수현(당시 침곡)에서 양반과 노비가 한판 소송전을 벌였다. 이 소송은 양반인 이문건과 노비인 내절금이 어떤 비옥한 땅을 놓고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양반 대 노비의 소송이라니 승부의 결과가 무척이나 뻔해 보인다. 아니, 그 이전에 양반가 노비가 소송을 통해 나름 평등하게 시시비비를 가려 볼 기회가 있었다는 자체가 무척 놀랍지 않은가?
내절금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문건에게 강요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바친 땅이기에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했고, 이문건은 자신의 노비가 마친 땅이므로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했다. 이 소송전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문건은 이 소송의 결과를 자신의 일기인 《묵재일기》에 기록하지 않았고, 소송 이후에도 땅 주인은 여전히 내절금이었다. 그렇다. 놀랍게도, 이 둘 사이의 소송은 노비인 내절금이 이긴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조용히 남편의 내조만 했을 것 같은 양반 마님들은 고리대를 놓았다. 당시 양반 마님들은 집안 살림 전체를 관장하는 리더였는데, 집안 살림을 더욱 불리기 위해 열심히 모은 돈을 이웃이나 노비에게 빌려주고 이율을 쳐서 돌려받는 식으로 돈놀이를 했다. 이런 빚 때문에 다투다 사람이 죽는 일까지 생겨나며,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양반 여인들에게 돈놀이를 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따로 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이제까지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상천외하면서도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응원하게 되기도 하는 조선인들의 쩐의 전쟁을 소개한다. 누구나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었던 조선, 신분에 상관없이 억울하다 외쳐볼 수 있었던 조선,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바로 그 ‘조선’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딸을 위해 부동산을 투기한 임금이 있다?
노비가 양반을 고소해서 이겼다고?
재산, 신분, 세금으로 다시 알아가는 조선사 상식
이 책 안에는 조선인의 돈을 향한 다양한 고군분투기를 담았다.
1장은 조선에서는 주로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났는지, 또 당시에는 어떤 것들이 재산이 되었는지 현대와는 꽤 색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2장과 3장에서는 돈 앞에 피도 눈물도 없던 형제간, 그리고 친척 간의 물고 물리는 재산 다툼을 만날 수 있다. 그 처절한 전쟁을 보고 있자면 아마 현대판 재벌 막장 드라마는 저리 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4장에는 이웃 간의 재산 다툼을 담았다. 여인들의 집안 재산을 모으고 불리고 굴리는 비법부터 노비의 사유재산이 인정되던 시대의 부자 노비와 거지 양반의 소송기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을 조선의 면면을 담았다.
5장은 사람도 물건처럼 재산이 되던 시대의 조금은 암울한 이야기를 담았다. 어쩔 수 없는 신분제의 굴레를 넘어 자신의 삶, 가족, 재산을 지키려 애쓴 분투기를 엮었다.
6장에서는 부당한 세금과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백골에도 세금을 거두던 악독한 양반들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쉴 새 없이 관아를 드나들던 상인들의 사연까지 모두 모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돈과 관련한 분쟁이 생기면 쪼르르 관아로 소장을 들고 달려갔기에, 조선 시대의 소송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조선소송실록〉을 부록으로 실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주저앉아 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씩씩하게 이를 타계하기 위해 노력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한 꺼풀 벗겨 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