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시대의 문화적 변동에 따라 생성과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창세 신화 속의 춤에서부터 메타모더니즘을 지향하는 현대의 춤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 맥을 이어오면서 문화사의 한 줄기로서 존재했다. 무용이론(dance theory)은 이러한 춤을 창조하고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는 지식으로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용이론 자체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는 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서양과 한국의 무용이론을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고찰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이다. 원시 시대의 석벽화와 조각, 고대의 건축물 등에 새겨진 문양을 비롯해 최초의 무용이론서인『오케소그래피(Orchesographie)』를 포함한 문헌에서 보이는 무용 및 무용이론에 관한 묘사와 기록을 토대로 서양 무용이론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고 무용이론의 흐름을 통시적으로 조망한다. 아울러 시대별 사회문화를 고려한 당대 철학자 및 비평가, 무용학자들의 춤에 관한 담론을 살펴봄으로써 서양 무용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서양 무용이론에 대한 고찰에 이어 이 책에서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춤이 존재함에도 한국 춤의 원리나 이론, 방법론 등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한국 무용이론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한국 춤 역사에 존재하는 최고(最古)의 이론서인 『악학궤범』을 비롯해 『정재무도홀기』, 『국조오례의』 등 다양한 문헌을 분석해 한국 전통춤의 원리와 특징을 설명한다. 또한 서구와 본격적으로 교류를 시작한 시기인 근대 지식인층에 의해 형성된 무용학적 담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용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무용이론이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와 그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특히 다른 학문들과의 융합을 통해 다학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용학 연구를 자세하고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회 속의 춤의 기능과 역할을 해석하는 무용사회학, 춤의 논리와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안무학, 춤의 현장성을 고려한 무용인류학, 춤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학을 접목한 비판무용학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무용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책 내용
이 책은 총 2부 10장과 특별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서양 춤의 이론적 담론에 관한 글 다섯 편으로 구성되었는데, 먼저 1장에서는 무용이론이 무용의 스타일, 테크닉, 예술적 표현 및 사회문화적 맥락 등을 모두 포괄하는 광의의 용어라고 정의한다. 아울러 석벽화나 조각 등 원시 시대의 유물에 새겨진 문양으로부터 현대의 다양한 문헌에서 볼 수 있는 춤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봄으로써 무용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어왔는지 밝히고 있다.
2장에서는 중세 유럽의 교회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미로무용(迷路舞踊)의 배경이 되는 사상과 이론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미로무용이 테세우스 신화의 내러티브를 기독교적으로 차용해 신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하고 이어서 종교적 알레고리로 가득했던 중세의 사상이 미로와 그 안에서 행해지는 움직임에 반영되어 영적인 은유로서 기능했음을 논한다.
3장에서는 낭만주의가 발레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고 낭만주의 시대 테오필 고티에 등 당시 지식인들의 춤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비평이 무용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음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무용가이자 무용이론가로서 움직임의 원리를 발견해 춤에 대한 ‘쓰기’를 시도했던 루돌프 폰 라반의 이론을 중심으로 안무이론 및 안무학에 대해 논하고, 5장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무용학자들의 연구를 분석해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비판무용학 연구의 동향과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최근 무용학계에 화두로 떠오르는 연구 경향을 짚어본다.
한국 춤의 이론적 담론에 관해 설명한 2부 역시 다섯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6장에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춤을 기록한 시문, 악장을 비롯해 당시 사용되던 춤 동작 용어에서 춤의 움직임을 ‘풍(風)’과 결부시켜 표현한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 전통춤의 움직임에서 ‘풍’이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원리임을 설명한다.
7장에서는 조선 시대의 춤이 온전히 감상을 위해 단독으로 행해졌다기보다는 주로 길례, 가례, 빈례 등 다양한 ‘의례’ 공간에서 의식의 한 부분으로서 행해졌음을 밝히고, 일무, 문무 등 의례에서 추었던 춤의 특징을 설명한다.
8장에서는 한국에 서구의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던 근대 지식인층에 의해 생성된 무용학적 담론의 형태와 방향성을 고찰한다. 무용이론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무용학적 담론의 생성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에서 무용이론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추적한다.
9장에서는 1930년대 최승희와 조택원에 의해 시작된 한국 창작춤이 이후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알아보고 한국 전통춤에서 움직임이 생성되는 중요한 원천이자 원리인 ‘호흡’에 대해 설명한다.
10장에서는 무용예술의 변화가 역사와 정치, 과학기술, 문화의 발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사회 및 시대의 변화가 무용과 무용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책의 말미에는 특별 담론으로 프랑스 루이 14세 시대의 궁정무용과 극장무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바로크 시대 무용이론을 분석한 글을 영어 원문으로 소개한다. 이와 아울러 비판이론이 18세기 초 프랑스 무용 연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