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백령 시집 『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
―남북대립, 남남갈등의 이데올로기 독초를 뽑아내려는 간절한 노래들
『사상으로 피는 꽃 이념으로 크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임백령 시인, 건지시인선04, 전북대출판문화원)는 우리나라 과거와 현재의 많은 역사적 문제를 낳았고 민족 내부 갈등의 원인이랄 수 있는 사상과 이념의 대립을 다룬 시집이다. 이 시집은 남한과 북한, 남한 내의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중립적 위치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북한 동족을 포용하려는 시각과 함께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책이나 집단의 태도를 신랄하게 질타한다. 그와 함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한 축을 이루는 동맹국 미국도 비판의 대상에 올리고 있다. 시인은 달라지지 않은 한반도의 역사가 조금이라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며 해묵은 사상과 이념의 대립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땅의 무모한 집착과 관성에 맞서 거칠게 목소리를 높인다.
1부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의 아픔을 담고 있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 갈등 상황을 폭력 자행의 토양으로 삼고 무자비하게 살상을 집행했던 위정자와 하수인, 국가기관들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던지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정서 표출은 그들을 단죄하고 징벌하는 의례이다.
2부는 남북분단을 고수하려는 자들에 대한 냉소적인 어조, 동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관성적 태도에 대한 반성, 분단국가 동족으로서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시선 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남북대립과 분단 현실의 이념 갈등의 적대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들을 향한 의도된 저항이라 할 수 있겠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북한 주민 33만여 명이 굶어 죽은 시기 우리의 냉담함을 짚어 낸 작품도 있는데, 또다시 어려워진 북한의 식량난 소식을 접하며 우리의 처신이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 속에서 어떠해야 하는가를 곱씹게 한다.
3부는 시인의 주관적인 시각이 깔릴 수도 있겠으나 강대국이 남북분단의 현실을 개선하고 동족끼리 화합하고 통일로 옮겨가도록 기여하는 적극적인 역할보다 세계지배 욕구를 강화해 나가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남한의 맹방인 미국과 지도자, 무비판적인 우리 정치인에 대한 생각들을 모았다. 외세, 제국주의 등의 시어들은 아직도 분단과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 상황을 방관하는 초강대국에 대한 질책이므로 반미(反美)라는 표현보다 비미(批美)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 채널 e」라는 작품은 TV 제목을 차용한 듯한데, 해마다 되풀이하는 십여 가지 한미 연합 훈련을 앞에서 나열하고 남한 북한 중국 미국 등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담담하게 고찰한 뒤 맨 마지막에서 ‘통일을 위해 남북이 선택해야 할 길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인형 뽑기방에서 인형 뽑기에 거듭 실패하고 돌아서다가도 강대국을 떠올리는 시인의 일관된 마음을 천착했다면 이 시집의 의미를 파악한 독자이리라.
4부는 남한 내의 소모적인 이념 갈등과 사상의 충돌로 인해 소위 친북좌파니 보수우파니 서로 공격의 날을 세우는 현실에서 시인은 두 집단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사고로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해법보다 극단적 보수우파를 질타하며 다른 한편에 서는 쪽을 택한다. 시인은 남북이 빠져 있는 질곡의 역사 속 오래된 늪과 수렁을 벗어나 지고지순한 한민족의 절대 목표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분단과 이념 갈등에 머물러 동족을 적대시하고 강대국의 보호와 예속에 치우치려는 보수우파의 태도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고 이런 내부 충돌의 과정을 통해 분단 상황에서 형성된 잘못된 집단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의 자체적인 정화와 청산만이 해묵은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길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학살(虐殺)’, ‘분단(分斷)’, ‘외세(外勢)’, ‘이념(理念)’이라는 대제목에 이어서 ‘사족(蛇足)’을 넣은 곳이 5부이다. 4부까지 사상의 대립과 이념 갈등을 다루고 공세적인 어조여서인지 그것을 조금 완화하기 위해 덧붙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