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사에서 “민족”은 188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그 역사 해석을 주도하는 한 주제로 계속되 온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민족”이란 것이 우리 교회 신앙의 구성 전개 과정에서 접수와 거부라는 측면을 통해 그 주류 형성의 확고한 주체로 작용한 사실이 밝혀진다.
이러한 전개 과정은 18세기 천주교의 전교 때부터 벌써 현저한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천주교는 그 본래의 울트라몬타니즘(Ultramontanism)이 초국가적 신앙 유형의 정착을 시도하였다. 시기적으로 그 다음에 들어오게 된 예수교(개신교)가 우선 천주교와는 다르다는 호교적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 있었다. 적어도 반민족은 아니고, 오히려 친민족이란 존재 양식을 시위하여야만 했다. 이러한 민족과의 필연적인 접속은 조선교회 구형기와 일제침탈기와의 중복 상황 때문에 가속해서 굳게 다져지며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한국교회에 있어서의 민족, 선교사, 일본의 아주 독특한 역학 함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결론을 내린다. 첫째, 신앙은 초월적 차원에서만 이해하도록 구형되어 있어서, “민족”과의 상반된 방향을 지향했다는 사실이다. 그 접속의 촉매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적출되지 않고 있었다. 둘째로, 초기 선교 상황이란 실정 아래서 친선교사적 구조는 반일을 전제하게 되고, 반대로 1930년대 후반부터 나타났던 바와 마찬가지로 동양적 기독교는 일본적 기독교의 형성을 지향하면서 반드시 반서양선교사적 경향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이때 반선교사 자체만 의식하고 친일을 기도하지 아니하였다 손치더라도 그 역학관계는 그렇게 작용하였다. 1930년대의 종파 운동이 그러한 역학권 안에서 기복하였다. 그래서 친일의 함수 속에 쉽게 빠졌다. 따라서 문제는 탈서양선교사하되 친일로 경도되지 않고, 친동양하되 반선교사로 기울지 않는, 강력한 탈권에너지가 참된 의미의 “조선민족의 교회”를 형성해가는 저력으로 역사를 이끌어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교회사에서의 “민족”, 그것을 위해 교회는 구원을 선포하였고 또 심판도 선포하였다. 장차도 그러할 것이다. 교회만이 민족 절대화나 그 폐쇄성을 깨고 그 주술화를 막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동원되도록 하며, 그 민족에게 신부의 사명을 천명해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 여러 각도에서 이 교회사의 산맥을 더듬어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