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마케팅을 진두지휘한, 전 KT 부사장의 마케팅 분투기
20년 가까이 마케팅 현장에서 전투를 벌여 온 KT 전 부사장의 생생한 마케팅 분투기를 담은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개인휴대통신(PCS) 상용화가 시작되면서 저자가 마케팅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부터 ‘최고의 감탄사 올레!’의 런칭 성공, 영화를 통해 ‘아이폰=KT’를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시도, 그리고 서비스 품질과 가격 경쟁을 넘어 디자인 경영까지 시도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신기술과 기기가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통신업계의 경쟁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과 숨겨진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내는 미시적인 기업사이자 소중한 기록이다. 또한 저자는 시장에서 통하는 마케팅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향후 펼쳐지는 마케팅에서 주류를 이룰 잠재력이 큰 이슈들을 살펴보고 디지털 마케팅 및 브랜딩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이론을 소개한다.
퇴직 후 분식당을 운영하면서 마케팅의 원점인 ‘고객이 원하는 것’을 서비스와 품질로 구현하기 위해 마케팅의 최전선에서 “가장 낮은 마케팅”을 실천하고 있는 저자의 마케팅 분투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통신업계의 경쟁체제 도입과 “가장 낮은 마케팅”의 시작
인터넷 대중화 및 SNS의 발달과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일상의 변화는 여전히 급속도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KT(한국통신)는 이러한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을 견인한 기업으로 1885년 설립된 한성전보총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81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신 분야가 분리되어 정부가 지분을 100% 보유한 KT(당시 사명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설립되었고 1990년대 초반과 중반, KT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던 국제전화와 시외전화에 드디어 경쟁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885년 전신(電信)을 시작으로 통신업을 영위해온 KT는 100년 넘게 경쟁다운 경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통신사업자들에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경영학의 한 분야에 불과했다.
저자에 따르면, 대한민국 통신 시장에서의 본격적인 경쟁은 무선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 KT는 ‘한국이동통신’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이동통신 사업을 영위하다가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타사에 넘겨주게 되고 그때부터 KT 내부에서는 이동통신사업의 재개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쟁에 의한 스트레스가 없었던 저자는 1997년 10월 1일 5개의 사업자가 이동통신 시장에서 혈투를 시작하면서 피 말리는 마케팅 현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가장 낮은 마케팅”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케팅의 본질과 핵심에 도달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을 담아
마케팅 및 전략기획 분야에서 폭넓은 지식과 실무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은 저자는 시장에 대한 감각과 통신 서비스에 대한 지식을 보유한 마케팅 전문가로 손꼽히지만, 언론이나 여타 매체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은 수많은 마케팅 전쟁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옆에서 지켜본, 굵직하고 시사점이 큰 사례들로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내용이 많다. 저자가 경험한 실전 사례에는 마케팅에 관심을 둔 독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수고를 겪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빠른 길로 마케팅의 본질과 핵심에 도달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마케팅, 고객의 지불 의사를 높여라
1장에서 저자는 시대별로 달라지는 마케팅에 대한 기존의 정의들을 살펴보고 마케팅 관련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고객의 마음을 읽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고객의 진심을 읽어 낼 수 있을까? 필자는 특정 상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생각, 느낌, 연상, 태도 등을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써 고객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코드(code)를 읽는 방법과 소셜 미디어상의 비정형화된 소셜 데이터를 분석해 대중의 심리적 동향이나 사회적 흐름 등을 파악하는 소셜 분석(socialytics) 등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마케터에 대한 환상을 깨라
2장은 마케터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은 분들께 마케터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업무 외적 어려움을 실제 사례와 함께 기술하였다. 마케팅 청탁과 타 부서와의 갈등, 광고를 집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포함해 CEO 등 경영책임자들이 성과지향형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도 소개한다. 특히 KT의 올레(olleh), 쿡(QOOK) 같은 광고 시리즈의 성공 비결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의 마케팅 분투기
3장은 마케팅 현장에서 벌어졌던 저자의 생생한 체험을 오롯이 담았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마케팅 사례별로 무슨 고민을 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하여 어떻게 실행에 옮겼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시사점이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가를 중점적으로 서술하였다.
신비주의에 가까운 CF로 젊은 층의 이목을 끌었던 KT 경쟁사의 위력적인 TTL 브랜드 마케팅에 맞서 2000년 여성 전용 브랜드인 ‘드라마(Drama)’를 출시한 이야기와 010 통합 번호와 이동전화 번호 이동(Mobile 제도의 도입과 요금제를 둘러싼 가성비 마케팅으로 경쟁사를 따돌린 사례는 물밑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웰컴 투 동막골〉과 〈미녀와 야수〉를 통해 영화 투자 프로젝트인 ‘굿 타임 시네마 파티’ 마케팅으로 이동통신 시장의 핵심 고객층인 젊은 세대들과 새로운 관계 설정에 성공한 사례를 비롯해 앰부쉬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였던 2002년 월드컵 마케팅의 실패와 2006년 월드컵 마케팅에서 6개월에 걸친 설욕 과정은 마케팅 현장의 생중계를 방불케 한다.
디자인 마케팅이 아닌 디자인 경영으로
KT는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되었으나 ‘투박한’ 이미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통신업계의 경쟁에서 ‘투박함’은 고객과의 거리를 멀게 하는 큰 장애물이었다. 저자가 디자인 경영의 일선에서 일을 시작하던 무렵 회사 내부에서는 디자인 경영 추진에 대해 사치스러운 시도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당시 상사의 결단과 지원에 힘입어 저자는 누가 뭐라고 하든 돌격적으로 일을 추진했다. ‘디자인 마케팅’이 아닌 ‘디자인 경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디자인은 마케팅을 뛰어넘는 기업문화나 경영 철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경영의 성과로 손꼽히는 사례가 바로 올레스퀘어, KT의 다양한 제품에 일관된 개성과 고급스러움을 부여한 PI 디자인, 폰 다이어리, 폰 브렐라, 폰 마우스 삼총사 등이다.
당대 최고의 브랜드 ‘쇼’의 탄생 일화와 ‘쿡’과 ‘올레’ 빅 브랜드의 동시 런칭
즐거움을 핵심 아이덴티티로 삼은 ‘쇼’의 탄생은 영화관에서 막춤을 추는 광고로 유명세를 탔지만, ‘쇼’라는 빅 브랜드의 탄생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쇼’를 준비하던 당시에는 경쟁사로의 내부 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저자는 보안을 지키면서 관련 부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일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 외 제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고민 등 ‘쇼’를 당대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과정은 시장에 차별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마케터의 책임과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 저자는 “‘쿡’과 ‘올레’는 브랜드로서의 성공 여부를 떠나 두 개의 빅 브랜드를 3개월 간격으로 런칭했던, 브랜딩 역사상 가장 무모한 시도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쿡’과 ‘올레’ 브랜드 탄생 과정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퇴직 후 분식집을 운영하면서 “가장 낮은 마케팅”을 실천
2018년 저자가 KT의 고객서비스 플랫폼 기업인 KTCS 대표로 재직할 무렵 여름 휴가철을 맞아 생활밀착형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전국 가성비 맛집지도’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 앱을 통해서 사용자들은 맛과 가격, 양을 기준으로 맛있고 합리적인 가격의 음식을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식당’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당시 경험의 연장선이었을까. 퇴직 후 저자는 잠실새내역 근처에서 튀김이 맛있는 집으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튀김 맛집 S분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낮은 마케팅”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