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대성당은 그야말로 돌로 만든 성서가 되었습니다.
건축은 말이었고, 대성당은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 발표 이후 재판소나 집회장 등으로 사용되던 공공건물을 개조했던 바실리카 양식은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전환되었다. 12세기 중엽에 등장했던 초기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적인 요소가 잔재해 과도기적 경향을 띠며,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고전적 고딕 성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고딕 성당의 긴 여행을 로마네스크 성당인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레세(Lessay)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에서 시작한다. 고딕 양식의 조짐이 태동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고딕’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화가이자 미술사가 조르지오 바사리(1511~1574)였다. 새롭게 등장했던 미술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고딕’ 또한 처음 등장할 때는 ‘조악하고 야만적인 고트족의 문화’라는 멸시의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고딕 양식은 고트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13~15세기 무렵의 예술 양식을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고딕 양식은 건축으로 대표되며 이 시기의 건축은 고딕 성당으로 요약된다.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 성당보다 웅장하며 수직성을 강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육중한 벽체와 기둥은 훨씬 더 날렵해지고 창은 넓어졌다. 높게 솟은 첨탑은 하느님을 향한 종교적 열망을 한껏 드러내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풍부한 빛은 신비롭고 경건하기만 하다. 파사드 상단에 장미꽃을 닮은 원형 창(장미창)을 배치해 이곳이 영원한 진리와 빛, 그리스도의 거처임을 밝히고 있다. 이 모든 공간적 변화는 새로운 건축 기술인 포인티드 아치(Pointed arch, 첨두아치)와 리브 그로인 볼트(Rib Groin Vault, 늑재 교차 궁륭),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공중 버팀벽)란 외부 버팀목이 발명됐기에 가능했다. 이 세 가지 건축 기술이 고딕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핵심을 이룬다.
흔히 중세를 문화의 암흑기라 말하지만, 고딕 성당을 염두에 두면 의문을 품지 않을 수밖에 없다. 중세에 발아하고 꽃을 피운 고딕 성당이야말로 서양문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고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딕 성당이야말로 당대의 종교, 역사, 철학, 예술 등 모든 문화의 집결체이며 상징적 공간이라고 한다면,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고딕 양식과 스콜라철학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동시성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당시 스콜라 학파는 인식의 ‘명료함’을 추구했다. 심지어 신의 존재마저도 가시적으로 드러내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신의 현존을 빛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당연히 성당은 빛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이를 위해 건축의 수직성과 벽체의 경량화, 크고 넓은 창문을 확보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야만 했다.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고딕 양식의 건축이 태동하고 발전을 주도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거쳐 샤르트르 대성당에 이르면서 고딕 양식의 성당 건축은 전성기를 누리게 되고, 랭스 대성당과 아미엥 대성당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프랑스의 고딕 양식이 이웃 국가들에 전파되고 지역성을 반영한 양식으로 변주되면서 유럽의 고딕 양식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의 솔즈베리 대성당,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등이 그 대표적인 성당들이다. 각국의 후기 고딕 양식은 프랑스의 수직성에 대한 강요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고딕 이전의 고전적인 수평성과 개성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책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끝자락에서 고딕 양식으로 이어지는 태동기에서 시작해 유럽의 각국으로 전파되어 나름의 고딕 양식을 갖추게 되는 완성기에 이르는 성당 건축의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과정의 갈피에 스며있는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맥락을 짚어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친절히 돕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유럽의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성당들이 그냥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기둥 하나 창문 하나에 스며있는 중세의 역사와 건축적 변화, 당시 사람들의 신에 대한 지극하고 숭고한 믿음의 이야기들이 들려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