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폴란드 크라카우를 거쳐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리고 구동독 지역이었던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체제 전환국을 둘러보고자 떠난 출장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평화적 분단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던, 프라하에서 만난 교수에게 다시 통일을 원하는 움직임은 없냐고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며 “우리(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모두 EU에 가입했다.”고 대답했다.
그의 미소 띤 표정이 한동안 가슴에 맺혀 있었다. 그 미소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 큰 블럭으로의 통합이라는 미래를 선택했다는 자신감처럼 보였다.
머리가 조금 아팠다.
마침 들려오는 뉴스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기 거래의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분석 뉴스로 전해지고 있었다.
동아시아는 신냉전 구조로 달려갈 듯 긴장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폴란드 교수의 미소는 더욱 머리를 아프게 했다.
동아시아 지역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아픈 역사들이 떠올랐다.
더욱이 뉴스로 흘러나오는 세상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기는커녕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세상은 여전히 불바다다. 이 와중에 한반도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남북의 통일 없이도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그저 이상에 불가한 것은 아닐까?
북한의 문화예술을 왜 연구해야 할까? 이런 유형의 질문을.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해 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돌이켜보면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감정과 이성의 공존을 익히는 엄격한 학습 과정이었다. 그 배움의 과정에서 에곤 쉴레를 만났고 피카소, 세잔, 타틀린를 만나서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시대를 읽어내는 작업은 익숙한 일이 되어 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북한 미술을 연구하자, 많은 이들이 묻기 시작했다.
북한미술을 왜 연구하나요?
실은, 그 질문이 내겐 낯설었다. 그리곤 그러한 지점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 과정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이여성의 작품 〈격구지도〉를 만났을 때의 감정은 여전히 소중하다. 생각해보니 벌써 25여년 전의 일이었다. 석사를 갓 졸업한 내게 교수님이 이여성의 〈격구지도〉 작품을 보여주며 이 작품에 대한 분석 논문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 때는 아직 미술계에서도 이여성이 누구인지 몰랐던 시절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그가 무엇을 고민했고, 월북한 그가 왜 논쟁을 했으며, 숙청을 당했는지 일련의 일들을 밝혀내면서도 여전히 그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 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나를 계속 그의 작품에 빠져있게 했었다.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서 잊혀진 그가 눈은 편안하게 감을 수 있었을까, 그가 무덤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를 역사 속에서 건져 내, 논쟁적 세상에 다시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 하염없이 가슴이 뛰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과정을 지나. 나는 지금 ‘통일’과 ‘경계’, ‘통합’과 ‘개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북한에서 문화예술작품들은 북한 정책을 주민들에게 교양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따라서 북한미술작품을 통해
북한의 정치 사회의 움직임을 분석해낼 수 있다. 동시에 민족공동체라고 우리가 말은 하고 있지만, 너무나 달라 보이는 한국과 북한 사람들이 여전히 민족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도 북한미술작품은 대답을 해주곤 했다. 여전히 우리에게 같은 지점은 무엇이고, 그 사이 도저히 같아질 수 없어진 부분은 무엇인지 묻게해준다. 그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책 안에 들어있다.
철없는 서툼과 치기어린 열정이 있었다.
구동독지역이었던 드레스덴은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이 잘 정리되어있는 도시였다. 드레스덴 시장님께 통일 직후, 문화재의 복원과 정비에 많은 예산을 쓰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는 없었냐고
물었다. 드레스덴 시장은 답했다.
“이 프로젝트는 100% 후원금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원금을 모두 문화재 복원과 재건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물론 있었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하였고 지금은 모두가 그 때의 정책적 판단이 옳았음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재건된 문화재는 드레스덴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되었고, 혼동스러웠던 주민들의 뿌리를 든든히 잡아주었죠.”
실제로 드레스덴은 문화의 도시로서 매혹적인 공간이 되어 있었고, 다시 가족들과 와서 조용히 머물다 가고 싶은 장소로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개성에 다시 갈 수 있는 날을 나는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