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에 재조명되는 고려시대의 집단의식
고려시대의 국가단위 집단의식은 근대의 민족에 토대를 둔 국가의식과는 크게 달랐다. 특히 고려 초에는 중요한 지역집단의식들이 공존하여, 국가단위의 집단의식은 역동성과 유동성을 가졌다. 고려국가의 세력권에는 12세기 초까지 만주의 동남부 여진부족들, 발해유민집단들, 탐라국 등이 포괄되었다. 동맹관계를 주축으로 한 그 세력권은 독자적 천하로 관념되었고, 그 천하의 맹주인 해동천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도들이 성립되어 있었다. 국가단위에 가장 근접한 집단의식인 삼한일통의식은 13세기 초까지 삼국유민의식의 분립성과 공존하였다. 또한 발해유민이나 탐라의 포함 여부를 놓고, 고려건국을 주도한 고구유민계열과 신라유민계열의 두 갈래 삼한일통의식이 경쟁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라 말에 대두한 지역단위 자위공동체들이 강력한 단결력을 갖는 집단의식을 유지하며 존재하였다. 고려국가의 지방행정제도는 자위공동체들의 자치적 조직을 최대한 활용한 체계였으며, 자위공동체의 군사력은 초강대세력들의 침입에 일 대 일로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저력을 발휘하며 전략적 기반이 되었다.
해동천자의 천하부터 자위공동체까지 근대 국민국가의 통념 너머의 역사에 대한 조명
노명호 교수의 신간 "고려국가와 집단의식"
작년 석가탑 묵서지편문서의 복원과 판독·역주 공개로 국보 126호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신라시대의 것임을 재확인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노명호 교수가 고려시대의 집단의식을 연구하며 고려의 황제국제도의 배경 등을 밝혀낸 "고려국가와 집단의식"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모노그래프]의 62번째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은 한국을 비롯한 현대 동북아 국가들의 역사인식에서 국민국가적 통념에 의해 왜곡되고 간과된 역사적 사실, 10~14세기의 고려 국가 내부와 만주, 그리고 동북아의 국제관계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해동천자의 천하, 삼한일통, 삼국유민, 자위공동체, 이 네 가지 집단과 그와 관련된 집단의식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소개되고 있다. 저자가 연전에 밝힌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이 황제를 상징하는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나 고려 군주가 황제(천자)를 칭하였던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칭제와 관련된 당시의 국내 및 국제 정치의 역사적 실상은 지금까지 주목되지 못하였다. 이 책에서는 고려가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 북부의 초강대세력 거란과 대치하며, 만주 동남부의 여진 부족들이나 발해유민들을 규합하여 이끌었던 고려가 중심이 되는 천하의 변천사를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민족형성 이전의 이종족 간의 오랜 공동의 역사와 느슨한 유대의식으로 이루어진 집단의식을 주목하고 있다. 고려의 국가단위 집단의식에 해당하는 삼한일통(三韓一統) 의식이 적어도 크게 두 가지 계열이 병존하며, 경쟁하고 있었던 것 역시 종래에 알려지지 않은 한국 민족형성사의 이해에 중요한 역사상이다. 고구려유민계열과 신라유민계열의 삼한일통 의식은 그 안에 만주의 발해유민과 남쪽의 탐라국(제주도)을 포함하거나 배제하는 큰 차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자료들을 통해 검토되고 있다. 그리고 두 계열의 삼한일통의식이 현실의 정책에서나 역사의식에서 방향을 달리하며 경쟁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 변천과정이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 삼국유민의식은 신라 말에 후삼국으로 재분열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 이후 점차 사회융합이 진행되면서 약화되어 갔지만, 13세기 초까지도 지방반란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러한 삼국유민의식과 관련된 후삼국과 중국 오대시기 왕조들 및 일본과의 외교관계의 새로운 면, 삼국유민의식이 삼국시대 이래의 문화전통과 연결되는 측면들이 추적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지방행정 단위를 이룬 자위공동체에 대해서는 그 앞 뒤 시기의 신라시대나 조선시대와 달리 자치권을 많이 가지고 있고, 지방사회의 집단의식과 행정체계, 군사제도 등에서도 크게 달랐던 새로운 면모들이 소개되고 있다. 자위공동체의식이 여러 가지 사회적 장치로 밑받침되며 강력한 단결력을 형성시키는 역사상이 추적되고 있다. 그리고 강력하게 단합된 개별 자위공동체의 군사력이 대규모 중앙정부군도 감당하지 못한 외침의 방어에 성공한 사례들을 발굴하여 보여준다. 특히 고려가 대륙의 초강대세력의 전면적 침입에 맞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한 저력의 바탕이 자위공동체의 방어력이었다는 사실과 그것을 전제로 한 고려 정부의 대거란전쟁이나 대몽고전에서의 방어전략과 전쟁방식이 추적되고 있다. 많은 자치권을 갖는 자위공동체들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과 국가단위의 집단의식이 타협하며, 공존하는 정책방향이 형성된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다 크게는 앞에서 본 네 가지 집단의식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시대의 역사에 작용하고 있었고, 각기 변천하고 있었던 역사적 측면이 검토되고 있다. 그 변화의 추이는 고려 말이 되면 오늘날의 상황에 보다 가까워져 국가 단위 집단의식의 단일성과 배타성이 강화되는 단계에 도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