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태주 시인을 있게 만든 대표시 「풀꽃」의 역사
“어느 날 많은 이들의 가슴에 시의 홑씨가 가 닿았습니다.”
열아홉이던 1963년 공주 사범 학교를 졸업한 나태주 시인은 이듬해인 1964년 경기도 연천 임진강 강변의 군남 초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초등학교 선생이자 시인으로 살아오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꾸준히 시를 쓰고 시집을 펴냈다. 하지만 시인과 시가 대중의 관심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태주 시인은 반향이 거의 없던 당시의 시작(詩作) 활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을 향해 수없이 러브레터를 썼지만 단 한 장의 답장도 오지 않았다.”
‘독자들이 알아주지 않는 시골 시인’이었던 나태주 시인은 단 한 편의 시로 인해 엄청난 반전을 맞이한다. 2005년에 발표한 시 「풀꽃」(시집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에 첫 수록)이 2012년 광화문 교보 생명 건물 외벽의 ‘광화문 글판’에 실리고, 2013년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의 주연 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시를 낭송하며, 2015년에는 ‘지난 25년간 광화문 글판 가운데 가장 사랑받은 글귀’의 1위를 차지하면서 같은 해 펴낸 시선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초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시인에게는 ‘바로 그 한 편의 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한 편의 시로 인해 시인의 시 세계와 독자 대중이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태주 시인에게 ‘바로 그 한 편의 시’는 당연히 「풀꽃」이다. 시인은 자신을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풀꽃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 「풀꽃」을 기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 시에 얽힌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고, 그 오랜 바람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이 책 『현명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빚은 동화
“『현명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교편을 잡은 지 만 35년이 되던 1999년 나태주 시인은 교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아 충청도 계룡산 기슭의 왕흥 초등학교로 향한다. 학생 수가 마흔다섯 명이고 담임교사가 네 명뿐인 작은 산골 초등학교였다. 이곳에서 시인은 엉뚱하고 별난 소년, 현명이를 만난다.
시인은 아이들의 특별 활동을 위해 글짓기 교실을 연다. 일곱 명의 여자아이와 한 명의 남자아이가 교실을 찾아온다. 뜻밖에도 그 한 명의 남자아이는 현명이였다. 현명이는 공부가 조금 모자라고 고집스러우면서도 때때로 제멋대로였지만, 아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어울렸다. 나태주 시인 역시 현명이의 개성을 존중하고 현명이의 눈높이에서 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현명이는 다른 아이들 몰래 교장실로 찾아와서는 야무진 알밤 두 톨을 시인에게 건네고 달아난다.
「풀꽃」은 존재 내면에 깃든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그 아름다움이 비로소 발산되고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시인에게 이러한 깨달음을 주고 한 편의 짧고 간결한 시구로 표현할 수 있는 영감을 불러일으킨 촉매제는 아이들이었다. 시인의 말대로 「풀꽃」은 “초등학교 선생을 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던” 시였다. 바꾸어 말하면 이 시는 대지에서 자라는 풀꽃처럼 투박하고 풋풋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이 시인에게 준 선물이었던 것이다.
『현명이』는 나태주 시인이 “제일 평화롭고도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말하는 한때의 행복과 보람과 사랑의 기억을 엮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린이 독자에게는 감성과 인성을 한층 키우는 기회가 될 것이고, 성인 독자에게는 팍팍한 삶의 더께에 짓눌린 행복한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