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와 그의 시 세계의 수용 양상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수용주체는 바로 우리나라의 ‘시인’들이다. 릴케가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으며 우리 시인들의 시의식과 시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이 일깨우는 평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시인들은 시의 창작자이면서 또한 시의 독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릴케와의 관련하에 이 책이 살펴보고 있는 우리 시인들은 박용철, 윤동주, 김춘수, 김현승, 전봉건, 김수영, 박양균, 박희진, 허만하, 이성복, 김기택 들이다.
1930년대 시문학파 시인 박용철에게 릴케는 시적 창작 과정의 모범이었고, 1941년 5월 도쿄 쇼신사에서 릴케의 시집《기수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를 구입했던 윤동주는, 그해 11월에 쓴〈별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그리운 릴케의 “이름을 불러”본다. 김춘수는 대학 시절 릴케의 작품들을 찾아 “학교는 자주 까먹고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시 세계를 확립해 갔으며, 김현승에게 릴케는 “추구의 진실성”을 풍겨주는, “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시인”이었다. 해방 때 18세 소년으로 소련군이 진주한 평양에서 릴케 시집을 늘 끼고 다녔고, 월남하는 뱃길의 파도 속에서 릴케의《과수원》을 꼭 품고 있었던 전봉건은 “이 시기의 내게 있어서 릴케는 시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시의 전부였다”고 술회하며, 이성복은, 장만영의 일어판 중역을 통해 읽은 릴케의 “마리아여,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소서!”라는 시구를 되새기며, “1970년대, 80년대의 험악한 시절을 지내오면서도 그 소녀들의 목소리는 내개 늘 남아 있어서, 길을 가거나 길 위에서 머뭇거리거나 주문처럼 입술 위로 새어나오곤 했다”고 고백한다.
1930년대 정지용,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파를 결성하였던 박용철로부터 지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허만하 김기택에 이르기까지 이 시인들의 면면은 한국의 현대시사 전체에 걸쳐 있다. 이는 릴케가 한국 현대시사 속에서 우리 시인들에게 끊임없는 시적 자양이자 참조가 되어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정 시기나 특정 유파를 넘어 전 세대 전 시기에 걸쳐 있는 이 시인들과 릴케 간의 관계를 탐색하며 저자는 때로는 문헌학적 측면에서(박용철), 때로는 황폐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절박한 염원에 대한 공감의 입장에서(전봉건, 박양균, 김수영), 그리고 시의식과 테마상의 유사성이나 개별적인 시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김춘수, 김현승, 박희진, 허만하, 이성복, 김기택) 각각의 시인들의 릴케 수용 방식에 접근하고 있다.
각각의 시인들의 릴케와의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적인 계기를 통한 것이지만, 이들 시인들과 한국 현대시사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릴케와 한국 시인들 간의 관계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시사의 저변을 흐르는 끊이지 않는 한 줄기였다는 것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장의 대학노트로 남아 2004년에야 발굴되어 알려진, 박용철의《라이너 마리아 릴케》(로베르트 하인츠 하이그로트)의 번역은 그 자체로 우리 번역사에 기록될 만한 한 페이지이며, 한국전쟁 이후 1950, 60년대의 극한적 인간 존재의 상황에서 하이데거와 볼노프 유의 실존주의 철학의 프리즘을 통한 릴케의 수용은 우리 지성사의 한 고비를 이룬다.
이 책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현대시사에서의 릴케 수용 양상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시인과 시인의 만남, 그 만남을 통한 시인이 되어감에 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시인들 간의 만남을 되돌아보고 기록하고 있는 이 책,《릴케와 한국의 시인들》은 그래서 ‘모든 시인들과 한국의 시인들’의 만남을 염원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 현대시사는 일구어져 왔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