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의 조카》는 매우 기구한 운명을 가진 책이다. 이 소설은 “비윤리적으로 윤리적인” 한 건달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하지만, 그 책 자체의 운명도 역시 기구했다. 프랑스어로 쓰인 이 책은 괴테의 독일어 번역본으로 먼저 출간되었다. 한 독일 장교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서관에서 불법적으로 빼돌린 원고의 한 사본이 독일로 흘러들어가 괴테의 손에 닿았던 것이다. 이 괴테의 번역을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디드로의 원고라고 속였던 사기출판사건을 거쳐, 센 강변의 한 고서점에서 먼지에 쌓인 디드로의 친필 원고가 발견됨으로써 이 소설의 정본이 출판될 수 있었다. 《라모의 조카》는 한 무뢰배의 삶을 활기차게 이야기하는 악한소설의 한 유형이면서 동시에 진지한 철학소설이다. 이 작품에 관해, 괴테는 그 주인공이 모든 아첨꾼들과 모든 노예들의 편을 들고 그 떨거지들을 대표하면서도, 생생하고 발랄한 개성과 시적 재능을 지닌 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헤겔은 《정신 현상학》에서 정신이 부정에 이르는 어떤 순간, 즉 ‘순수사유’와 퇴폐의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이 작품을 이용하며, 대혁명 직전의 프랑스가 그 순간을 화신하였다고 말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에서 미셸 푸코는 ‘의도적인 미친 짓의 세계’와 ‘광기의 세계’ 사이의 단절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라모의 조카》를 소개한다. 무질서를 질서의 체계로 만든 이 소설은 모든 합리적 체계가 의혹의 대상이 된 시대, 바로 우리 시대의 텍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