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거리와 의약품의 전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다
1부 ‘바다를 건넌 食과 藥’에서는 바다를 건넌 각국의 음식과 의약품이 새로운 땅에서 또 다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와인이 한반도에 처음 전해진 것은 언제일까? 1653년 8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향하던 중 낯선 땅, 제주도에 표착한다. 조선 왕국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이들은 낯설고 두려운 제주 땅에서 관민의 환심을 사고자 배에 실어 고이 간직해 온 술을 꺼내 선보인다. 이것이 바로 와인이다. 이후로도 18세기 조선 해안에 등장했던 여러 이양선을 통해, 19세기 이후 유입된 서양 문물로 인해 와인을 비롯한 서양 술은 조선 왕실과 고위층에 널리 전파되었다.
K-푸드의 대표 주자 만두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변화하고 발전한 끝에 이제 ‘Mandu’라는 이름으로 K-푸드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흔히 만두가 중국 고유의 음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밀농사 장려와 제분법의 발전은 중국에서 다양한 만두를 탄생하게끔 했고, 고려시대 전후로 한반도에도 중국 만두가 전해졌다. 다종다양한 중국 만두가 한반도에 전해진 후 어떻게 ‘한국식 만두’로 탈바꿈했는지 살펴본다.
호랑이 연고로 친숙한 ‘타이거밤’은 객가 화교인 오추킨에 의해 만들어져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일본에서 처음 판매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은단’은 대만, 한국, 북한 등에 진출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은 국경을 초월한 히트상품이었다. 이 외에도 나폴레옹 시기 군수품으로 발명된 통조림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의 바다를 침탈하며 조선으로 건너왔고, 수산물 통조림 생산량의 급증으로 인해 조선의 통조림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 신문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다
2부 ‘바다를 건넌 문물들’에서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품은 문물들이 바다를 건너게 된 경위를 밝히며, 교류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한 문물의 모습을 살펴본다.
오늘날 한국영화는 세계 유명 영화제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내셔널 시네마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 인도 등과 비교하면 영화 전파 시기는 다소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을 거쳐 조선에는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영화는 식민지 현실을 잊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했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식민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영화를 대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영화가 과거 감상의 시기를 지나 창작의 시기로 들어서며 고유한 로컬리티와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살핀다.
벽돌 건축은 1880년대 청국에서 벽돌 재료와 기술자를 들여오고 벽돌형성기를 수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조계지의 건축물을 시작으로 서구식 학교,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벽돌 건축은 개화기 조선의 도시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더불어 박람회나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미술’과 인류 최초의 놀이 도구인 주사위 놀이판의 변천사, 역사에 묻힐 뻔한 폐선들이 한반도에서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까지. 거친 파도를 건너온 신문물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 바다를 건너 시작되는 재탄생의 역사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건너온 물건들은 바다를 건너면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낸다. 오추킨은 그의 발명품 타이거밤이 “호랑이 연고”로 불리며 21세기까지 이국땅에서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릴 줄 상상이나 했을까. 버려질 뻔한 폐선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번 출항을 명받을 것이라고 자신의 운명을 예상이나 했을까.
국경을 넘기 전, 물건과 문물은 고유한 형태와 전통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먼 바다를 건너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고 그곳의 실정과 상황에 맞게 변모하며 재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을 물건에 투영하고, 자연스레 물건의 쓰임새와 가치도 변화한다.
이 재탄생이 식민지 애환을 보여 주는 비극적인 역사로 남든, 오늘날 K-문화의 선풍적인 인기를 주도하는 토대가 되었든 바다를 통해 건너온 물건들은 물건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도 함께 창조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제 우리 앞에 수십 년 전 바다를 건넌 열 가지 물건들이 도착해 있다. 인간과 물건의 역사가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 그 순간을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