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상이 배움터인데,
꼭 교과서로 배우고 시험을 치는 것만이 실력의 전부일까?
우리의 아이들, 아무리 보아도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학교에 다닐 때 이미 모든 행복을 빼앗겨버리기 때문일까? 추억과 행복의 저장소요, 원동력이 되어야 할 학창 시절에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평생 우리는 우울하고 불행한 나날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80년대 이전의 세대에겐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 학창 시절은 학원과 과외의 추억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잘살아 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리고 어떤 분의 글 제목처럼 ‘미꾸라지에서 용이 된 나라’를 이룩했다. 5천 년 이 땅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물질적 가난을 벗었다. 무역 규모로 보았을 때 세계 10위권 안에 진입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금 우리가 비교하여 배우기를 원하는 덴마크는 유엔 행복지수 조사에서 2012년, 2013년 연속으로 1위에 올랐다. 또 부정부패 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뿐만 아니라 언론 자유도도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수도 코펜하겐은 해가 온전히 뜨는 날이 1년에 50일뿐이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혔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덴마크가 처음부터 살기 좋은 나라였던 것은 아닌 듯하다. 1814년 전쟁에 패해 지금의 노르웨이 땅을 잃었고, 1864년에는 독일에 국토의 3분의 1을 빼앗겼다. 남은 것은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였다. 그런 덴마크를 재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초석을 놓은 사람이 니콜라이 그룬트비 목사(1783~1872)였다.
어떻게 해서 그룬트비 목사가 피폐해진 조국 덴마크를 일으켜 세웠는지, 그 근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오늘날 이루어낸 업적들을 살펴보면 짐작은 된다. 그것을 거울삼으려 한다. 거기에서 우리의 피폐해진 교육 현실과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교육은 문제를 타파하는 만능이다. 하지만 교육은 또한 한 나라를 망치는 무능의 원천일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 학교가 있기 전에도 교육이 있었음을, 교육이 있기 전에도 행복이 있었음을 주지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즉 학교가 없었어도, 수업이 없었어도 교육은 이루어져왔다. 학교 건물이 없어도 교육은 할 수 있었다. 학교가 만능이 된 순간 역설적이게도 학교는 사라졌다.
누군가 말하기를 학교와 똑같이 생긴 곳이 교도소라고 했다. 곱씹어보니 100%로 공감이 된다. 높은 담장, 쇠로 된 철문, 운동장을 중심으로 ㄱ자로 세워진 건물! 50분 수업과 10분의 휴식, 일정 기간 이상 갇혀 있어야 하는 공간, 단지 집으로 가는 시간만 빼면, 배급과 급식의 차이지만 식사 방법도 똑같다.
숲에서 하는 숲속 학교, 바다에서 하는 바다 학교, 강에서 열 수 있는 강변 학교는 세울 수 없을까? 또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온천장으로 옮겨가는 학교, 비행기 아니면 바다의 유람선 안에서 열리는 이동식 학교는 힘들까? 온세상이 배움터인데, 꼭 교과서로 배우고 시험을 치는 것만이 실력의 전부일까?
자유로운 학교! 학교 설립이 자유롭고 학교 선택이 자유로운, 더 나아가 교육 방법이 자유로운 학교가 필요하다.
이 책이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드디어 학교의 설립을 자유화하고, 학교 선택을 자유화하는 법안이 만들어지고 통과될 것이다.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 자유로운 상상을 종이 위에 펼친다. 자유학교여! 오늘 뿌리는 이 씨가 싹을 내어라. 머잖은 장래에 꽃을 피워라. 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