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미술의 ‘제작’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과거에는 작가가 ‘예술 작품’의 모든 과정을 ‘제작’해야 한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마르셀 뒤샹의 〈샘〉 이후 예술의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었다.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을 사용한 작품 제작은 작가를 제작의 부담에서 해방시켰고, 예술가의 범위를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존재’로 확장시켰다.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예술 시장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더 이상 금기나 제약이나 넘어설 벽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현대미술에서도 ‘새로움’과 ‘독창성’이 여전히 통용되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들의 도전이다. 각 장에서 소개하는 회화, 목조, 건축, 디지털, 돈, 외주 제작 등을 통해 다변화된 현대미술 제작 공간을 들여다본다.
● ‘제작’ 과정을 왜 들여다보아야 할까?
작가에게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지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재료와 방식은 작품의 결과(형태)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확장하거나 제한하고, 이를 구상하는 작가의 아이디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껏 ‘제작’의 이야기는 여러 이유로 금기시됐다. 제작 방식의 다양화로 자본과 외주 제작이 흔해지면서 수반되는 문제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직접 제조하지 않으면 작품에서 사라지는 것이 있진 않을까? 제조 과정에 어떤 윤리적인 문제가 관여되어 있나? 작가가 아닌 사람이 만들면 작품의 독창성 결여는 없을까? 원작자, 저자, 저작권의 경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제작은 비밀스럽게 그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러나 ‘제작’은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에 따라 작품의 해석도 결을 달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제작은 물질적인 가치뿐이 아닌, ‘생각의 한 형태’다. 이 책은 오늘날 미술 제작 현실을 생산적으로 검토할 뿐 아니라,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품 제작 방식을 조명하며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현대미술의 목격자가 된 우리도 제작에 연루된 문제에 공동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제작 상황을 돌아보는 시각을 통해 예술의 영역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