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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 상

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 상

  • 일연
  • |
  • 마당
  • |
  • 2023-12-13 출간
  • |
  • 520페이지
  • |
  • 150 X 225mm
  • |
  • ISBN 979119157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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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삼국유사」는 이렇게 엮어졌다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사라면, 「삼국유사」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야사에 해당한다. 5권 2책이며, 상권인 1, 2권은 주로 역사 사실을 다루었고, 하권에 해당하는 3, 4, 5권은 불교 사실을 다루었다. 내용은 주제에 따라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유사遺事’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것을 보완한다는 성격을 가진다. 국가의 대사업으로 편찬된 「삼국사기」는 방대하고도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와 자료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편찬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합리성을 강조하고, 중국 중심적이어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다루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기존의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룬 점은 승려인 일연의 입장에서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일연이 이를 저작할 당시는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몽골의 침략이 계속되어,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비판되고 민족자주 의식이 강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다. 일연의 저술 의도에는 이같은 민족감정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는 가치가 없다고 제외시키거나 소홀히 다룬 자료들에 대해서 주목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결과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도 있고, 다르게 기술하거나 해석한 부분도 적지 않게 있다. 이런 면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진다.
「삼국유사」는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상·하 양권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역사 사실을 주로 다룬 1, 2권은 상권에 해당하고, 불교 사실을 주로 다룬 3, 4, 5권은 하권에 해당한다. 실제 내용에서는 주제에 따라 다시 9개의 편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삼국 역대 왕들의 계통을 도표로 보인 왕력, 건국의 시조와 왕들의 사적을 다룬 기이紀異2편이 들어 있다. 왕력편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상단에 놓고 그 아래 신라·고구려·백제의 왕들을 시대적으로 배치하여 대비시켰다.
기이편은 제2권에까지 이어지는데, 전반부에서는 건국의 시조와 왕들을 중심으로 삼국과 그 주변 여러 나라의 유래와 역사를 이야기했다. 전반부에서 언급된 나라는 고조선을 비롯하여 위만조선·마한·진한·변한·대방·낙랑·가야·부여·말갈 등 수십 개국에 이른다. 후반부에서는 주로 신라의 역대 왕들이 중심이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후백제와 가락국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첨부했다.
제3권에는 불교를 전해준 여러 승려들의 사적을 다룬 흥법, 사찰의 탑이나 불상, 건물 등에 얽힌 일화를 다룬 탑상 2편이 실려 있다.
제4권에는 원광·자장·원효 같은 고승들의 학업과 공적을 실은 의해 1편이 실려 있다.
제5권에는 불교적 이적을 다룬 신주, 수도승들과 신도들의 정진하는 모습과 덕행을 다룬 감통, 세속을 떠나 은둔하며 덕행을 닦는 승려와 신도들의 생활 및 사상을 이야기한 피은, 효행의 미담을 전하는 효선 등 4편이 실려 있다.
「삼국유사」는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전해져왔다.
후대로 오면서 필사본은 판각본과 활자본으로 출간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최초의 판각본이 언제 간행되었으며 어떻게 전해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동안의 자료들을 검토해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의 판각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전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판본은 1512년(중종 7년) 경주 부윤 이계복이 주관해서 간행한 정덕본이다. 그는 「삼국유사」의 판본이 마멸되어 없어진 것을 애석히 여기고, 성주목사 권진으로부터 완본을 구해서 여러 읍에 나누어준 뒤 그곳에서 부분적으로 판각한 것을 모아 간행했다.
그러나 중간의 편목 명칭이 빠져 있고 편저자의 서명이 5권에만 실려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이때에도 이미 내용상의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판각본은 조선 후기까지 전해오다가 1845년(헌종 25년)에 개간되었다. 필사본으로는 안정복이 소장하던 것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 영인, 출간되었다.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문학부 총서 제6에 수록되기도 하고, 국내에서 고전간행회본으로 영인되기도 했다. 이것은 「삼국유사」의 원형을 확인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지만, 글자의 탈락과 오류가 많고 뒷사람이 가필한 곳이 많아 자료로서의 가치를 감소시킨다.
현대 활자본으로는 1908년 일본 도쿄대학 문학부에서 나온 사지총서본史誌叢書本이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을 바탕으로 하고, 다른 판본을 참조해서 교정한 것이다.
국내에서 발간된 활자본으로는 1928년 조선사학회본과 계명구락부에서 출간한 최남선의 교감본 및 그것을 다시 수정한 증보본이 있다. 이 증보본은 1954년에 나온 것으로 그동안 일반에게 가장 널리 보급되었으며 「삼국유사」 연구의 바탕이 되어왔다. 이것은 계명구락부본을 바탕으로 하고 순암본과 광문회본 및 근년에 제1권만이 발견된 송석하본 등을 참조해서 교합한 것이다.
「삼국유사」의 가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단군신화를 실어 민족의 시조와 유래를 알 수 있게 한 점, 한반도를 중심으로 생성·소멸했던 여러 나라에 관한 자료를 실어 우리 민족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게 한 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당나라에 예속당하지 않기 위해 투쟁한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의식을 보여준 점, 「가락국기」를 통해 역사에서 사라진 가락국의 모습을 상세하게 전해주는 점 등이 그것이다.
당시의 불교에 관한 풍부한 자료가 실려 있으므로 불교의 전래와 전파, 사찰의 건립 유래, 불교와 민간신앙의 갈등과 화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과 불교와의 관계, 중국 불교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 등도 엿볼 수 있다. 지은이 자신이 승려이지만 불교의 문제점과 폐해에 대해서도 객관적 비판을 가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를 더해준다.
당시에 사용된 거서간·마립간·차차웅·거칠부·벌지지伐知旨 같은 고유의 지명·인명·관직명·사물명 등을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고 있어서 당대의 언어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고대국어의 원형과 변모과정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고, 국어사의 기술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국문학적 측면에서는 우선 향찰로 된 향가 14수의 원문이 설화와 함께 실려 있어 고대문학의 모습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구지가龜旨歌」·「해가사 海歌詞」·「치당태평송 治唐太平訟」과 일연의 찬시讚詩 등 한시漢詩 작품도 상당수 들어 있어 당대 한문학의 흐름을 살펴보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작품 속에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신화와 설화들은 우리나라 산문문학의 원류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조신몽 調信夢」·「김현감호설화 金現感虎說話」·「거타지설화」 등은 후대 소설의 소재적 원천이 되어 소설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속담과 격언, 사물의 형태를 설명하는 설화, 기원을 밝히는 설화, 지명의 유래를 밝히는 설화 등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악귀를 쫓기 위해 문에 그림이나 글자를 써 붙이는 관습이라든지, 정월 대보름날 까마귀에게 밥을 해주는 관습 등의 유래와 의미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그 안에 인용된 수백 권의 책 이름을 통해서 당대의 전적과 문헌을 살펴볼 수 있게 된 것도 또 하나의 가치이다. 「삼국유사」는 우리 고대사를 총체적으로 전해주는 보고寶庫로서, 최남선은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 “만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삼국유사」를 잡을 것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 집필 동기」

첫머리에 말한다. 대체로 옛 성인들은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는 부명符命을 받고 도록圖籙을 얻어 반드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으니, 그런 뒤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서 제왕의 지위를 얻고 대업을 이루었다.
그런 까닭으로 황하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옴으로써 성인이 나왔으며, 무지개가 신모神母를 에워싸서 복희伏羲氏가 탄생하였고, 용이 소전少典의 왕비인 여등女登과 교감하여 염제炎帝를 낳았으며, 황아皇娥가 궁상窮桑이란 들에서 놀다가 백제白帝의 아들이라 칭하는 한 신동神童과 통하여 소호少昊를 낳았고, 간적簡狄은 알을 삼켜 설契을 낳았으며, 강원姜嫄은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기弃를 낳았고, 요堯는 잉태한 지 14개월 만에 태어났으며, 패왕은 용과 큰 못에서 교접하여 태어났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와 같은 일이 너무 많으니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기한 일로 탄생했음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것이 책 첫머리에 기이편紀異篇이 실린 까닭이며, 그 의도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권1, 「기이」1 서

목차

상권(권 제1, 권 제2)
저자 일연 소개 / 7
「삼국유사」는 이렇게 엮어졌다 / 9
일연의 「삼국유사」 집필 동기」 / 14
권 제1
제1 기이紀異第一 / 48
서왈叙曰 / 48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오다 / 48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 50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하다 / 50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다 / 51
주가 기자를 봉하고 조선이라 하다 / 54
위만魏滿 : 衛滿조선朝鮮 / 56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왕검에 도읍하다 / 56
손자 우거는 천자의 명령 받들기를 거부하다 / 58
우거가 항복을 청하고 태자를 보내어 말을 바치게 하다 / 60
서로 의논하고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왕이 이를 거부하다 / 61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임둔·낙랑·현도 4군으로 만들다 / 62
마한馬韓 / 63
나라를 건국하고 이름을 마한이라고 하다 / 63
4이는 9이와 9한과 예와 맥이다 / 65
2부二府 / 67
두 개의 외부를 두다 / 67
72국七十二國 / 68
조선의 유민들이 70여 국으로 나뉘다 / 68
낙랑국樂浪國 / 69
전한 때에 처음으로 낙랑군을 설치하다 / 69
북대방北帶方 / 71
북대방은 본래 죽담성이다 / 71
남대방南帶方 / 72
처음으로 남대방군을 두다 / 72
말갈靺鞨과 발해渤海 / 73
발해라 부르다 / 73
고[구]려의 자손들이 나라 이름을 발해라 하다 / 75
발해국의 압록·남해·부여·추성 4부는 고[구]려의 옛 땅이다 / 77
백제 말년에 발해와 말갈과 신라가 백제의 땅을 가르다 / 79
졸본성은 땅이 말갈에 연접해 있다 / 80
읍루는 물길과 함께 모두 숙신이다 / 81
이서국伊西國 / 82
이서국 사람들이 금성을 치다 / 82
5가야五伽耶 / 84
한 개는 수로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 개는 각각 가야의 임금이 되다 / 84
태조 천복 5년 경자에 5가야의 이름을 고치다 / 85
북부여北扶餘 / 87
도읍을 정하고 왕으로 일컬어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 하다 / 89
동부여東扶餘 / 89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다 / 89
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위를 잇고 대소에게 전하였으나 무휼에게 망하게 되다 / 90
고구려高句麗 / 92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 92
시조 동명성제의 성은 고씨요 이름은 주몽이다 / 93
이 나라 풍속에 활 잘 쏘는 자를 주몽이라 하다 / 95
금와가 아들 일곱이 있어 언제나 주몽과 함께 노는데 재주가 뛰어나다 / 97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씨로 성을 삼다 / 99
졸본부여는 북부여의 별개 도읍지로 부여왕이라고 하다 / 101
변한卞韓 백제百濟 / 102
변한 사람이 항복하다 / 102
진한辰韓 / 104
진한은 열두 개 작은 나라가 있어 각각 1만 호로 나라를 일컫다 / 104
신라의 전성시대에 서울 호수가 178,936호에 1,360방, 55리, 35금입택이다 / 106
우사절유택又四節遊宅 / 108
봄에는 동야택, 여름에는 곡량택, 가을은 구지택, 겨울은 가이택이다 / 108
신라 시조 혁거세왕新羅 始祖 赫居世王 / 109
진한 땅에는 옛날 여섯 마을이 있었다 / 109
노례왕 9년에 처음으로 6부의 이름을 고치고 또 6성을 주었다 / 112
이름을 혁거세왕이라고 하며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리다 / 114
나이가 열세 살이 되자 남자는 왕이 되고 여자는 왕후가 되다 / 116
나라 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이라 하다 / 118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가다 / 120
제2대 남해왕第二 南解王 / 121
남해거서간은 차차웅이라고도 하다 / 121
신라에서는 왕을 거서간이라고 하고 혹은 차차웅 또는 자충이라고 하다 / 123
처음에 남해왕이 죽고 그 아들 노례가 왕위를 탈해에게 사양하다 / 125
거서간 또는 차차웅이 하나씩, 이사금이 열여섯, 마립간이 넷이다 / 126
제3대 노례왕第三 弩禮王 / 128
노례왕이 즉위하고 니질금 명호가 탄생하다 / 128
육부명을 정하고 육성을 하사하다 / 129
도솔가를 짓다 / 130
보습과 얼음 창고와 수레를 만들다 / 131
이서국을 정벌하다 / 132
제사 탈해왕第四 脫解王 / 133
탈해가 아진포에 도착하다 / 133
탈해가 지략으로 호공의 집을 빼앗다 / 136
탈해가 남해왕의 맏 공주와 결혼하고 영험을 발휘하다 / 138
탈해가 왕위에 올라 석씨를 취하다 / 140
탈해가 세상을 떠나 토함산신이 되다 / 141
김알지 탈해왕대金閼智 脫解王代 / 143
계림의 황금상자에서 김알지가 나오다 / 143
알지의 성을 김으로 하고 7대손 미추가 처음 왕위에 오르다 / 146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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