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맡의 스낵과 같은 현상학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 개념, 그중에서도 현상학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관념적인 설명 대신 이미지와 생생한 사례 묘사를 더한 초심자를 위한 현상학 입문서다. 이 책은 현상학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집필했다. 현상학자들이 다루는 철학 용어들을 쉬운 일상적 언어로 풀어내어 설명한다.
이 책은 후설에서부터 메를로-퐁티에 이르기까지 현상학이라는 학문을 이룩한 개념들을 하나씩 이해해 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상학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물줄기를 따라 글이 흐르고 있지만 스물아홉 개의 작은 장으로 나누어 두어, 각각의 내용이 독립적이다. 책의 어떤 부분을 펼쳐도 각각의 내용이 이해될 수 있도록 각 단락을 짧게 구성했다. 내 머리맡에 두고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스낵 같은 책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대표적인 현상학자 4명의 현상학적 관점을 소개한다.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순이다. 2부에서는 현상학과 관련한 스물아홉 가지의 개념들을 사례 중심으로 묘사하듯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모네, 마그리트, 고흐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또한 개념 옆에 원어를 다양한 언어로 같이 써 주어 이해를 돕고 있다. 아름다운 작품 이미지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현상학 개념을 묘사하여, 이미지와 이미지에 대한 설명만 읽어도 개념을 익힐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돋보인다.
네 명의 철학자로부터의 현상학
후설에서부터 메를로-퐁티에 이르기까지 현상학을 처음 만들고 발전시키기까지의 역사를 개괄한다. 후설은 현상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철학자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제자로 하이데거는 존재론의 확립을 위해 현상학을 방법으로 도입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상학은 드러난 그대로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존재를 부정했으며, 인간 존재의 필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적 계기 속에 드러나는 실존적 존재이다. 메를로-퐁티는 게슈탈트 이론을 도입하면서 무늬와 배경의 교차 가능성에 대해 집중했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을 제외한 환경을 주변으로 두지 않았으며, 인간도 다른 존재들의 주변 혹은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은 후설과 달리 몸현상학이라 할 수 있다. 몸은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주체로 보았다. 메를로-퐁티에게 몸은 의식 혹은 정신과 분리되지 않은, 몸주체다.
본래의 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일련의 현상학 개념들을 더 잘 체화하기 위해 수수께끼와 같은 다음의 단어들을 풀이한다. 본질과 실재 간의 논쟁을 살펴보자. 이 책은 본질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밤에 조명 빛에 본래의 빛을 잃고 파란색으로 보이는 벚나무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그러나 본래의 색이라는 것도 사실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닐까? 벚꽃의 본래의 색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또한 르네 마그리트의 〈백지 위임장〉이라는 작품은 말을 탄 여인의 나무가 있는 배경과 구분 없이 묘사되어 있다. 저자는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이 배경이고 무엇이 내가 보고자 하는 형태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숲을 주목할 때 말 타는 여인은 전경으로 물러나 의미를 상실하다가도 갑자기 여인은 배경의 밖으로 올라와 주체가 되어 있다. 이제 나무와 숲이 전경으로 밀려나 의미를 상실한다. 의미와 무의미는 이렇게 교차하며 세계의 깊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예시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가벼운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독자들은 이러한 철학적 물음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고민하면서 어느덧 현상학이라는 개념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