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의해 창조된 인물 중
마르틴 베크만큼 내가 마음 깊이 공감한 이는 없다.”
_박찬욱, 영화감독
●‘범죄 이야기’의 마지막 장으로
작품의 제목으로부터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테러리스트』에서 마르틴 베크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 테러를 일삼는 국제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폭탄 테러 사건은 세계 각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예정된 국빈 방문 일정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경찰에 지시를 내리고, 그 임무를 맡은 특별책임반의 책임자로 마르틴 베크가 지명된다. 이제 마르틴 베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들과 함께, 이미 스웨덴 땅으로 숨어든 테러리스트들의 계획을 저지해야만 한다.
소설의 제목인 ‘테러리스트’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마지막 ‘마르틴 베크’ 시리즈인 이 책에서는 테러가 잔뜩 벌어진다. 하지만 테러로 인한 혼란은 줄거리의 맨 앞과 뒤를 장식한 정치적 암살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셰발과 발뢰가 이 책에서 꾀하는 바는 테러의 근본적인 정의 자체를 훨씬 더 폭넓게 탐구하는 것이다.
_데니스 루헤인, 『테러리스트』 서문 중에서
직전 작품인 『경찰 살해자』에서 스웨덴 사회의 타락과 경찰 조직의 방만한 실태를 신랄하게 지적했던 저자들의 태도는 『테러리스트』에서도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단, 거대해진 범죄의 규모만큼이나 시야를 넓힌 셰발과 발뢰는 본작을 통해 스웨덴 사회를 넘어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해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테러리스트』에서 ‘테러리스트’는 단순히 국제 테러 조직에 속해 있는 자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타국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강대국의 정치인들과, 자국민을 억압하고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 즉 ‘국가’와 ‘체제’에 의한 폭력이 테러와 다름없음을 비판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 역시, 『테러리스트』의 서문에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에게 최대의 적은 “총알이나 폭탄이 아니”며, “스스로에게 불행한 상황을 오히려 치켜세우고 보상하는 관료 기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범죄소설을 현실의 거울상으로 만들다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_『테러리스트』, 554쪽
저자인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의 현실을 범죄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여과 없이 그려내, 독자들이 즐거운 독서 안에서 1970년대 스웨덴 사회의 문제적 면면들을 발견할 수 있게 했다. 등장인물들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인종차별주의 정책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을 지나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회상을 문학작품에 녹이는 작풍은 ‘마르틴 베크’ 이전까지의 범죄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기에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데니스 루헤인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당대 사회상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는 점을 짚어내기도 했다. 시리즈의 후반으로 갈수록 논객으로서의 셰발과 발뢰가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루헤인은 소설가로서의 셰발과 발뢰가 ‘이야기’의 유머와 재미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장르소설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음을 극찬한다.
순수한 사람들은 파괴된다.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파괴될 때가 많다. 소설 속 사건들이 일으킨 여파는 영혼을 난도질하는 것이어서,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빠져나올 수는 없다. 오직 체제 그 자체만이 모든 더러움과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꾸역꾸역 굴러간다. 그 규범을 지켜내려고 애쓰는 영리하고, 끈질기고, 멜랑콜리한 마르틴 베크와 함께.
_데니스 루헤인, 『테러리스트』 서문 중에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이후로 완전히 다른 흐름을 따르게 된 범죄소설은, 범죄를 통해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후배 작가들에게는 앞으로 범죄소설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며 그들로부터 “경찰 소설의 모범”(요 네스뵈), “현대의 고전, 오늘날에도 유효한 소설”(헨닝 망켈) 등의 찬사를 받았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스웨덴에서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는 등, 시대를 넘어서 그 인기와 작품성을 꾸준히 증명해나가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