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에 지조 있고, 유능하며, 책임감 강한 언론인의 전형
정태기 조선투위 전 위원장이 이 세상을 떠난 지 만 3년이 되었습니다. 정 위원장은 신문 제작에 참여한 기자로서도 뛰어났지만, 1975년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언론의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지키려던 언론운동에서도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조선일보 동료기자들의 자유언론 수호를 위한 신문제작거부 투쟁을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사로부터 해고당한 32명의 기자들과 함께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하여 투위 위원장으로서 한국의 언론운동을 이끌어나갔습니다. 2년이 채 남지 않은 2025년 3월이면 조선투위 출범 50주년을 맞게 되는데, 그는 이 50주년을 5년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조선투위는 출범 50주년을 앞두고 여러 의미 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고 정태기 위원장을 추모하는 문집은 이 행사의 첫걸음이 됩니다. 조선투위는 같은 시기에 결성된 동아투위와 함께 한국 언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조선투위는 특히 동아투위 및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민주 민족 언론을 지향하는 한겨레 창간을 주도했으며, 오늘까지 한국 언론의 주요 국면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선투위의 역사가 바로 정태기 위원장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 한국 언론사에 지조 있고, 유능하며, 책임감 강한 언론인의 전형을 발견하는 보람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성한표(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한겨레신문 전 편집국장, 논설주간)
이 책을 왜 내게 되었나?
이 문집은 고인 정태기 선생의 뜻에 반反한 것입니다. 고인의 뜻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평소 그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관한 책이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는 강력하게 반대했을 것이고 한사코 말렸을 것입니다.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이 책을 냈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 너무 고귀하고 크기 때문입니다. 그 유산을 기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언론이 아주 큰 위기를 맞고 있어 그의 유산을 적극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정태기 선생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때때로, 곳곳에서 ‘정태기’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를 존경하는 후배들이 그의 부재不在를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비범한 정신’, ‘숭고한 혼’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 세상엔 여러 가치들이 있지만 정태기 선생은 언론의 가치를 ‘지고한 가치’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를 지키려고 싸웠고, 그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언론이 탄압을 받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언론을 살려내려고 조선투위 기자들과 함께 단호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해직되었고 8년 동안이나 조선투위위원장으로 이 단체를 이끌었습니다. 그 때문에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의 분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짜 언론, 참된 언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섰으며, 그런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보려고 했습니다. 참된 언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앞장서서 만든 것이 ‘한겨레신문’입니다. 한겨레는 많은 해직언론인들과 국민들의 뜨거운 염원이 모아져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신문을 ‘시작한’ 정태기가 아니었으면 한겨레는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또다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사라진 지 30여 년 후에 또다시 ‘언론 암흑시대’를 맞으려고 합니다. 이미 그 어둠 속에 들어서 있습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자산인 공영방송을 사유물인 양 장악하려고 온갖 무법적인 행동을 자행하고 있으며, 신문을 포함한 모든 언론을 손아귀에 넣고 통제하려 합니다. 가짜 뉴스를 없애겠다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국가 반역죄’로 다스려 ‘폐간’시키고 기자를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군사독재 아래서도 이렇게 야만적인 폭언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언론이 이런 경멸과 모욕을 받아본 적이 없습나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8월 회원들(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자들의 85%가 현재의 언론이 ‘억압당하고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대답은 고작 9.9%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언론계는 이 위기의 정체를 바로 보고 모든 힘을 모아 단호하게 싸워야 합니다.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언론 탄압을 남의 일로 보고 방관한다면 머지않아 그 탄압의 칼날이 자신의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 언론계 전체가 나서야 합니다. 한국 언론이 이 탄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저 끔찍한 ‘암흑’ 속으로 떨어져버릴 것입니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쳤던 정태기 선생의 투쟁정신이 여러분의 싸움을 도와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 언론을 찾아 나섰던 고인의 ‘언론 정신’이 ‘프로파간다’로 전락한 오늘의 거짓된 언론을 바로 보게 하고 이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모문집 편집인 신홍범(조선투위 위원, 한겨레신문 전 논설주간)
언론의 자유, 그리고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사람들은 군사독재시대를 ‘암흑시대’라고도 부른다. 나라와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맘 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언론이 권력의 탄압에 굴복하여 알려야 할 것을 알리지 못하고 거짓 보도로 국민을 속여 국민을 어둠 속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통치수단의 하나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죽어 있는 언론을 살리려고 조선일보 기자들이 궐기하여 싸운 것이 1975년의 ‘3·6 자유언론수호투쟁’이었다. ‘있는’ 사건을 ‘없는’ 사건으로 만들고, ‘없는’ 사건을 ‘있는’ 사건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이라고 보도하는 신문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다고 거부한 것이 조선일보 기자들의 3·6 제작거부투쟁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지금이라도 올바른 신문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기자들을 대거 해직시킨 것이 1975년의 ‘조선일보 사태’였다. 언론사가 언론의 생명인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기자 32명을 언론사에서 추방한 것이 조선일보였다. 그 해직당한 기자들이 결성한 단체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다. 이 조선투위가 1년 반 뒤 50주년을 맞는다.
조선투위는 결성된 뒤 약 반세기에 걸쳐 언론의 자유와 민주언론을 위해 싸워왔으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과 함께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조선투위는 언론암흑시대를 살면서 언론다운 언론을 갈망해온 국민과 함께 새 언론 만들기에 나서 ‘한겨레신문’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리하여 동아투위, 80년해직언론인들과 함께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한겨레’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