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신, 그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렇게 수 십 년간 지속해온 독서와 사색의 그 결과물로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관과 인생관을 정리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사실 이 책에 앞서 2016년 10월 《다시 태어난 이교도의 고백(Confessions of a Born-Again Pagan)》이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비록 아브라함의 종교가 가리키는 창조주 유일신은 아니지만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자신만의 신학을 기술한 내용이었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는 의미의 다시 태어난(Born-Agai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제3의 신》은 그 후속편이다.
전편은 오늘 날 우리의 사고를 형성해온 고대의 위대한 철학 체계들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신이 현재의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 하향식으로 설명했다. 철학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묵직한 책이다. 반면 《제3의 신》은 인간의 경험, 저자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어떻게 자신의 인생관과 종교관까지 나아갔는지 차근차근 비교적 쉽게 설명해 간다. 전편의 해설서 또는 입문서와 같은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인간이 무한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출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지점에서 동물과 달라진다. 그런 절대 불변의 영원성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곧 신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순간을 사는 동물이면서도 영원성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에도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이 어정쩡함을 인간의 존재 구속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두 세계의 간극에서 깊은 절망과 삶의 환희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 따른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이 이성을 발휘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주장은 오류다. 그렇다고 지상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 없지만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천국에서 누구나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아브라함의 종교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계를 부정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성과 신을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고?
사실 인간은 그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 사회적 이상향, 심지어 완벽한 사랑을 찾아가는 단계를 살아갈 뿐, 그 최종적인 단계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이 지상과 천상의 도시 양쪽 모두에 속하는 이중적 시민권을 가진 인간의 삶이라고 말한다.
《제3의 신》은 사춘기 시절의 자의식을 폄하해 이르는 이른바 개똥철학을 끝까지 붙잡고 천착한 노학자가 이끌어낸 사색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성을 대단히 중시하지만 만능으로 여기지 않고, 영원성과 영성적인 태도를 중시하지만 인간됨의 포기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원하는 소중한 목표에 끝내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좌절에 시달려도 그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길에 삶의 환희가 있다고 우리를 토닥여 준다.
나는, 이 공동체와 나라는, 아니 세계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런 사랑과 현대 과학의 학문적 노력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할지 망설이며, 사회 정의의 구현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한가? 나는 무엇을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가?
대학 공부를 앞두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유할 만한 소중한 책이다. 적어도 세 번은 읽어보길 권한다. 본문과 저자 주를 읽을 때마다 무언가 조금씩 더 깨닫고 공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