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곳은 사라졌다.”
안내자 고양이를 따라 만나는 도시의 뒷골목 풍경
첫 페이지를 넘기면 높은 지붕 위에 올라서서 도시 저편 먼 곳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곳에 있던 집이 무너지자 쫓기듯 내몰려 이곳으로 왔지만, 이곳의 집들도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좀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따라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익숙하고도 쓸쓸한 도시의 뒷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머무를 곳을 찾는 고양이에게 이 도시는 끊임없이 떠나갈 것을 요구한다. 집으로 가는 여정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림책 《집으로 가는 여정》은 표현우 작가가 10년 가까이 작업해 온 골목길 연작에서 시작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 범일동과 서울 삼선동, 홍제동, 정릉동, 북아현동 등 재개발 지역의 오래된 골목길에 주목하고, 그 사라져 가는 풍경에 깃든 삶의 흔적을 세밀한 펜선으로 커다란 화폭에 담아 왔다. 이 연작에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도시의 이면을 세밀하게 비추는 고양이가 꾸준히 등장한다. 미술평론가 성원선은 그의 작업을 두고 “안내자로서 고양이는 그림 보기를 ‘걷기’의 방식으로 이끄는 주역이자 대상이다. 또한 ‘걷기’의 방식은 그의 그림 속 풍경을 보는 시점을 시선으로 변화하게 하는 조형 언어이다. 그러한 ‘걷기’의 방식으로 여러 편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일상에서 지친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일상이 담긴 장소를, 기억의 한순간을 눈앞에 떠오르게 한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간의 연작을 아우르며 마침표를 찍듯 작업한 이 그림책에는 머무를 곳을 찾아 끊임없이 떠도는 이들의 삶이 핍진하게 담겨 있다.
“그래도 같이 갈 거야?”
삭막한 도시에 온기를 불어넣는 누군가의 손길
끊임없는 ‘떠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떠돌던 고양이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어린 생명을 구한다. 숨을 돌릴 만큼만 보살핀 다음 미련 없이 떠나려 했지만, 가냘픈 생명을 거두기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렵지만, 따라오는 발길을 더는 뿌리칠 수 없다. 하나에서 둘이 된 그들은 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 서로의 온기에 기대면서.
그러고 보니 늘어진 전선과 무너진 집들,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가 뒤얽힌 삭막한 풍경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성스레 가꾼 화분이나 배고픈 고양이를 위한 밥자리처럼 상냥함이 스며들어 있다. 얼어붙은 도시를 녹이는 햇살 같은 손길들이다.
아기 고양이에게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지만, 날은 점점 쌀쌀해지며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두 고양이는 마침내 ‘집’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딘가에는 그들만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까? 길고 혹독한 겨울의 초입, 이 넓은 도시에 제 몸 하나 누일 곳 없어 슬퍼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누군가와 작은 온기를 나누고 싶은 당신에게 이 그림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