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겔」 「뉴욕 타임스」 「가디언」 「퍼블리셔스 위클리」
수많은 언론에서 극찬한 철학 분야 최고의 화제작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볼프람 아일렌베르거는 2018년 『철학, 마법사의 시대(Zeit der Zauberer)』를 펴냈다. 1920년대 전후 혼란기에 활동했던 네 명의 남성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발터 벤야민, 에른스트 카시러, 마르틴 하이데거의 삶과 시대상을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철학서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바이에른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아일렌베르거는 2020년 후속작으로 『자유의 불꽃』을 출간했다. 이번에는 네 명의 여성 철학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개인적 삶과 사고의 생성 과정을 생생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 또다시 언론과 독자의 호평을 받았다. 「슈피겔」은 “20세기 철학적 사유에 대해 알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흥미로운 책은 당신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라고 추천했으며, 「가디언」은 “인물들의 복잡한 삶뿐만 아니라 끝없이 동요하는 정신의 복잡한 흐름을 전달한다 … 네 사람의 끊임없는 지적 탐구는 매혹적인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평했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네 명의 여성 철학자는 전체주의적 정치 체계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듦으로써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큰 철학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근까지도 철학의 역사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일렌베르거는 그들이 이처럼 폭넓게 무시되거나 저평가된 상황이 오히려 흥미롭다고 생각했으며, 아카데미 영역 밖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을 형성한 ‘여성’ 철학자들이 20세기 철학의 대안적 역사를 서술하기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이 어두울수록
그들의 불꽃은 더욱 밝아진다”
여성에게는 투표권과 피선거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20세기 초에 태어나 정치적 혼란과 대립의 시기인 1920년대에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수많은 학문 중에서도 특히 철학에 몰두했던 네 명의 여성. 이미 그것만으로도 이 네 명의 여성은 ‘주변인’ 혹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제외하고 세 명은 모두 유대인이었기에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마지막에는 미국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도 직접적으로 정치적 박해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독립적 자아를 쟁취하기 위해 가톨릭적이고 보수적인 중상류 시민 계층의 억압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보헤미안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그럼으로써 그녀 역시 사회에서 배척되고 소외되는 주변인의 경험을 했다.
저자는 1943년 네 명의 철학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묘사하며 책을 시작한다. 곧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1933년부터 시대순으로 네 명의 성장 과정을 그려내고, 다시 1943년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처럼 문학 작품과 같은 서술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네 명의 철학자들이 각자의 완결된 세계를 이루어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장 폴 사르트르와 깊은 정서적, 지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페미니즘의 미래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리사 로젠바움’으로 태어난 아인 랜드는 192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소설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나 아렌트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전체주의의 기원』을 출간하면서 최고의 지적 유명 인사로 등극했다. 시몬 베유는 전쟁 중 난민 구호 활동과 저항 운동에 전념했으며 1943년 영국에서 굶어 죽은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순교자이자 진정한 성녀로 비쳤다.
아일렌베르거는 네 철학자의 삶과 성장 과정을 서술하면서 철학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던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다시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가 성공을 구가하던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도와 행동으로 만들어나가려고 애썼던 네 명의 철학자들을 ‘자유’라는 단어로 묶어 설명한다. 그들이 스스로 이루어내고자 했던 삶은 자유라는 단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이 있는 곳이 어두울수록 자유를 향한 그들의 불꽃은 더욱 밝게 타오른다.
이처럼 암울한 시대에 어떻게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
이 네 사람의 여성 철학자들은 전체주의적 정치 체계가 득세한 이 시대에 집단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를 깊이 고찰하며 자신의 사유 체계를 정립한다. ‘자아는 어떤 종류의 자유를 얼마만큼 요구할 수 있는가?’ ‘자유를 실현하고자 할 때 타인의 존재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그것은 자아의 자유에서 필수적인 요소인가, 아니면 반대로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방해하는 훼방꾼일 뿐인가?’ 등이 그 핵심 질문이다. 극단적인 자아 중심주의를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 아인 랜드부터 자아와 사회적 환경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주장하는 아렌트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거쳐 자아의 소멸을 철학의 목표로 보는 시몬 베유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철학자는 각자만의 서로 다른 대답을 제시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유의 개념을 사적 영역, 특히 성적 영역에서 자신의 의지와 욕구를 방해받지 않고 실현하는 자유로 이해했다. 보수적이고 가톨릭적인 부르주아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그녀에게 성적인 이탈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철학적 탐색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 독립적인 자아의 자유를 정립했다. 그녀를 이를 형이상학적 연대라고 부른다. “아무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아무도 자신만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내 자유의 진정한 전제 조건은 다른 의식의 자유에 있다. 그렇다. 그것은 좀 더 일관되게 생각한다면, 다른 모든 의식을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에 있다. 정치적으로 이것은 실존적 상호 해방이라는 특징 속에 있는 모두를 위한 해방 투쟁의 요구로 이어진다. 각자의 고유한 자유를 위해서, 자유 ‘그리고’ 사회주의를 위해서.”
한편 시몬 베유는 노동과 전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노예화와 폭력에 의한 인간의 사물화 현상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런 현상을 가능하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천착한다. 그녀는 자아, 자아 발전, 나르시시즘, 자아 발견을 향해 가는 현대 철학의 경향을 “전적으로 파괴적인 것”이라고 여겼으며, 해방을 주는 진정한 목표는 연대해서 타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 초월의 징표인 은총이 넘쳐나는 자아 포기다.” 그녀는 철학의 영역을 벗어나 ‘은총의 실존주의’라는 종교적 신비주의로 방향을 튼다. “그녀의 경우 변화의 경험은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행동의 토대 및 가치 있는 기원과 관련이 있었다.
아인 랜드는 사람들이 타인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하는 시대에는 ‘자아’라는 성스러운 단어가 중요한 기능을 상실했으며, 이런 자아 상실의 상태를 극복하고 ‘자아를 재정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모든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보기에는 국가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아주 커다란 ‘타인’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국가의 모든 개입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는 것을 전체주의적 위험으로부터 자아를 수호하려는 정신적 ‘독립운동’으로 격상시킨다.
점점 암울해지는 독일의 정치 상황과 유럽에서 점증하는 반유대주의를 목도한 한나 아렌트는 라엘 파른하겐을 집중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그녀는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여 새롭게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관계에서 “진정한 자기 결정이라는 독자적 윤리의 토대”를 끄집어낸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면서 이웃의 고통받는 얼굴에서 감동을 받는 보존된 자발성”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저자는 한 방송국과의 대담에서 네 명의 철학자들이 단지 자신들의 철학을 공표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체현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어두운 시대에 ‘철학하기’란 직업적 성공이나 아카데미에서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형성해나가는 추동력인 동시에 점점 집단화되어가는 사회의 위험 속에서 개인의 삶을 능동적으로 형성하고, 시류를 거슬러 자신의 삶을 관철하려는 의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