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의 6ㆍ25전쟁 사진집. 백선엽 장군은 생전인 1989년 자서전 《군과 나》를 펴냈고, 이번 사진집 《사진으로 읽는 군인 백선엽》은 백 장군 탄생 103주년을 맞아 펴낸 역사적 기록물이다. 백선엽 장군을 20년 이상 밀착 취재한 월간조선 오동룡 기자가 백선엽 장군 생전에 미공개 6.25전쟁 사진 6000여장을 받았고 그 가운데 600여장을 선택해 이번 사진집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엮은이 오동룡 기자는 백선엽 장군의 문산방어선 개전 초기부터 다부동전투, 평양진격 과정을 미 국가문서기록관리청(NARA), LIFE, 조선일보데이터베이스 사진들을 추가해 총 1000장의 사진으로 제1사단 시절부터 연합참모본부 총장까지 군인의 일생을 한편의 전쟁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정전 후 1954년 백선엽 장군이 동양 최대의 야전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제2차 참모총장시절 국가재건사업 지원과 군 현대화 작업, 참전국 외교 과정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도 싣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 ‘전쟁과 가족, 그리고 나’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1960년 군문을 떠나 대만대사, 프랑스, 캐나다 대사를 거치는 동안 해외 가족 생활을 처음으로 소개했고, 이후 1969년 귀국해 통해 조국근대화와 한미동맹 발전을 위해 힘쓴 사진들을 실었다.
▲감수자의 글
온창일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인간 백선엽, 군인 백선엽, 애국자 백선엽.
백선엽 장군은 인간, 군인, 애국자로서 세가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인간으로서 온후하고 포용적이다. 1990년대 미국 몬타나 대학에서 인간적 측면에서의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로 쎄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소위 대중작가들과의 대화에서 사실적인 경험에 근거한 설명으로 그들이 존경한다는 반응을 불러오기도 했다.
백선엽장군은 냉철한 용기와 지략을 보여준 군인이었다. 개성, 문산 전투에서 물러나 한강을 각개 도하할때 시흥에 집결하여 끝까지 싸우자는 말과 함께 사단장의 무력함을 말하고, 다부동 전투에서 후퇴하는 병사들 앞에서서 진두지휘를 하면서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고 하여 장성급 소대장이 되기도 했다. 산악지형을 통해 평양진격을 하면서 평양을 선창하면서 밤낮없이 진격하여 제일 먼저 평양에 진입하기도 했다. 중공군 개입후 한국군 2,3군단은 해체되었으나 백선엽의 1군단은 건재하여 한국군의 위상을 유지했다. 백장군은 작전시 지휘관은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시간과 장소에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용감하고 지략있는 군인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을 승리로 마감한 주역으로서 공산독재, 김일성왕조 체제를 거부하고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정착시켜, 한미동맹을 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보리고개를 없엔 박정희대통령의 한강 기적을 가능하게 한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이와같이, 백선엽장군은 포용적인 인간, 지인용을 겸비한 군인, 자유 대한민국 애국자였다.
한정적인 사진만으로 백선엽장군의 면모른 다 그릴수는 없겠으나, 제작진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은 역사적인 업적으로 기리 보전되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실로, 백선엽은 인간, 군인, 애국시민으로서 발군의 모습과 업적을 남기고 역사상 한 면을 기록한 인물이다.
2023년 11월 21일, 온창일
군인 백선엽 장군님을 그리며
장군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도 어언 3년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장군님이 남기신 빛나는 업적은 오늘의 우리 안보와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장군님께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해방과 분단, 6·25전쟁과 전후 복구, 5·16과 조국근대화,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이라는 격랑(激浪)치는 우리 민족의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타고난 고매한 인품과 천부적인 두뇌와 건강, 겸손과 배려심, 그리고 남이 도저히 흉내 못 낼 충정과 애국심으로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인 6·25전쟁 속에서 나라를 구한 국난 극복의 대명사로서, 또 5·16후 외교관 및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세찬 역사의 질곡(桎梏)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이룩하신 전공과 업적은 우리나라 ‘역사의 항아리’에 도저히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차고도 넘칩니다. 정부수립 후에는 대한민국에 침투한 공산 세력을 발본색원하는 숙군작업을 통해 군을 반공정신이 충만한 반공군대로 육성시켰고, 그 과정에서 5·16 이후 조국근대화의 영도적(領導的) 지도자가 될 박정희(朴正熙) 소령을 구명(救命)하는 역사적 결단을 보여주셨습니다.
6·25전쟁 때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갈리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낙동강전선의 다부동에서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고 외치며 선두에 서서 돌진함으로써 무너지는 전선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구하는 불멸의 전공을 세우셨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에는 한미연합군을 진두지휘하며 김일성을 전율케 하는 쾌속 진격으로 적의 수도 평양을 빼앗아 통일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중공군 개입 후에는 빼앗긴 서울을 다시 탈환하여 적의 수도와 우리나라 수도를 모두 빼앗고 탈환하는 세계 전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후방을 어지럽히는 지리산 빨치산의 완전 토벌과 중공군 최후공세를 저지하여 화천발전소를 확보하고, 오늘날 동해안의 휴전선을 북쪽으로 밀어 올리며 국토를 넓히셨습니다.
군문을 떠나서는 자유중국(현 대만) 대사를 비롯하여 프랑스 대사와 캐나다 대사 등 외교일선에서 우리나라 국익을 대변하셨고, 국내에 들어와서는 조국근대화의 대열에 합류하여 충주비료공장 증설과 지하철 건설 등 국가의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이후에는 6·25전쟁의 체험을 책으로 발간하여 국군장병 및 전후 세대에게 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침을 주셨고, 한미안보연구회를 설립하여 한미동맹 발전에 누구보다 기여하셨던 나라의 거목이자 군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장군님의 그런 불멸의 업적을 담은 사진집을 내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전쟁의 누란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군을 강군으로 육성시키고, 한미동맹의 디딤돌을 놓고 발전시킨 장군님의 나라 사랑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집은 6·25전쟁사이자 국군의 발전사이며 대한민국 현대사입니다. 이 사진집을 누구보다 기뻐하실 장군님을 그려봅니다.
2023년 11월 21일 남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