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년 만에 증명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가는 핵심 여정의 뒷이야기를 밝힌 시무라 고로의 자서전,
《수학자의 지도》
수학자는 왜 수학을 연구할까요? 평생을 소진해도 업적 하나를 쌓기 어려운 방대한 현대 수학에서, 어느 수학자가 특정 분야를 택하여 침잠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는 군국주의 치하의 초등학교 시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강당에서의 의식이 끝나면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 추가로 담임 교사의 짧은 연설까지 들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에게는 16개의 흰색과 분홍색 꽃잎이 반복되는 제국의 문양, 국화 모양의 설탕 과자가 하나씩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기미가요는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고관대작들의 술자리에서 여자 무용수들이 부르던 와카에서 유래한다. 노래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여인들에게 팁을 주었다. 나는 그러한 것을 한 나라의 국가로 지정하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우리들은 제국에게서 설탕 과자를 팁으로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무라 고로는 군국주의 일본에서 태어나 전후 폐허의 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학문의 경지에 올라 세계적인 수학자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현대 수학에서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대수기하학과 정수론에 여러 근본적인 업적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도쿄 대학 박사 과정 도중인 1953년에 대수기하학과 정수론을 연결시키는 논문 하나를 앙드레 베유에게 보냄으로써 수학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수학을 대표하는 앙드레 베유는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가명의 저자를 내세운 초일류 수학자들의 비밀 결사체를 탄생시킨 인물입니다.
시무라 고로와 다니야마 유타카는 1957년에 "다니야마-시무라 추측"을 남겼는데, 이것은 이후 358년 만인 1995년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그러나 다니야마 유타카는 다음 해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게 되고, 시무라 선생은 곧 유럽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으로 가서 수학 연구에만 평생 전념하게 됩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시무라 고로를 비롯한 극소수만이 연구하던 대수기하학은 이제 현대 수학을 대표하는 분야가 되었으며, 수학을 넘어서 이론물리학에서 자연의 제1원리 즉 "만물의 이론"의 유력한 후보인 끈이론에서 필수 언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방대한 기고 및 문헌들 중에서도 스스로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한 유일한 자서전이며, 30년 만에 런던 수학회보에 다니야마 유타카의 추모 기고를 게재한 이유 및 "다니야마-시무라 추론"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수학자들의 이름이 관여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시무라 선생의 가까운 연구 동료였던 앙드레 베유, 다니야마 유타카 이외에도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유진 위그너, 에드워드 위튼 등에 대하어 공식적인 문헌에는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스스로와 타인에게 사정없이 엄격하며 직설적인 학자들의 세계는 관객이 없는 25세기의 유리알 유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 혹은 무언가를 구사하는 구도자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한편 시무라 고로는 1999년에 은퇴, 프린스턴 대학교 수학과의 명예 교수가 되었으며 2019년 5월에 뉴저지 주 프린스턴의 자택에서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자서전은 수학 및 자연과학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독일의 슈프링어 출판사(Springer-Verlag)에서 2008년에 발간되어 2022년에 이끼미디어 독점으로 한국어판이 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