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탐색을 목표로 한다. 연구 소재로는 북한의 경제개혁 진퇴 과정을 선택했다. 이 책의 연구 주제는 크게 볼 때 두 가지다. 정권 수립 이후 북한의 경제개혁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개혁의 선택 혹은 후퇴는 누가 결정했는가이다. 왜 북한의 정책은 누가 결정하는지가 주제인가. 필자는 오랜 기간 분석관으로 북한을 연구하면서 많은 북한 관찰자들이 ‘북한의 정책이 정권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령의 합리적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석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필자의 판단은, 이런 해석은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 정책 결정의 전모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글은 ‘수령결정론의 과잉’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쓰였다.
이 연구는 북한의 경제개혁 선택 및 후퇴 결정 과정, 그리고 그 집행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정책추진 양상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정권에 걸친 북한의 경제개혁사(經濟改革史)를 정리했다. 먼저 개략적으로 김일성 시기에 경제개혁 의제가 대두된 배경을 분석하여 북한 정권 초기부터 고착된 개혁 조치 선택의 제약조건에 대한 이해를 도모했다. 이어 김정일 집권 시기의 경제개혁 모색·착수·확대·정체·후퇴 과정(2000~2010)과 김정은 시기 경제개혁 의제 부활·시범 조치·완성·정체·후퇴 과정(2012~2023)을 분석했다.
정책은 한 번의 공식결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국의 공식결정은 행동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 한 정거장에 불과하며, 그 실행과정에서 끊임없는 누수(漏水)와 변형이 생긴다. 이 책에서는 왜 그 같은 조치가 선택되고 변형되는지를 규명한다. 경제정책 결정의 배경으로 경제적 효용 극대화 등 경제적 요인에 대한 분석은 경제학자의 의견을 참고하면서, 여기서는 주로 권력관계 혹은 관료들의 행태 등 정책학적 혹은 정치적 맥락에서 정책결정과정을 해석했다.
이 연구를 하게 된 배경에는 북한 정책결정체계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북한 정책결정체계의 특징은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된 정보와 결정 권한, 엄격한 수직적 위계 구조, 감시·통제기제의 치밀한 분포, 정치체제의 폐쇄성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특징이 북한 정치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정책결정기구와 실제 운용 양상은 어떻게 다른지, 지도자의 관행화된 리더십 특성을 부하들은 어떻게 활용해 정책결정체계에 어떠한 방법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중앙에서 결정된 정책은 집행과정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다룬다. 특히 이 책은 김정일과 김정은 시기의 정책결정체계는 그 구조와 과정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