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이름을 소리 내어 보았다
예쁜 이름이었다
아이는 꿈이 있다.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재능도 있는 것 같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아이가 그린 만화를 기다린다. 길고양이 아로를 돌보는 일도 즐겁고, 아로가 주인공인 만화를 상상해서 그리는 일도 재미있다.
아이의 부모는 삶이 고달프다.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가 벅차다. 부모는 삶을 놓아 버리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의 삶 역시 위태로워진다.
「내가 그릴 웹툰」은 삶과 죽음의 경계 지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이는 줄곧 자신의 꿈에 대해, 당장 친구와 함께 할 일에 대해 들려준다. 아이의 만화 공책에는 아직 백지가 많이 남아 있다. 이곳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알 수 없지만, 그곳을 채워 나가는 일은 아이 몫이다. 아빠가 마음대로 아이의 공책을 구겨 버렸어도, 아이의 삶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그렇게 함부로 구겨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이는 죽음을 선택한 적이 없다. 부모에 의해 아이의 삶이 끝나 버리는 일, 가장 끔찍한 형태의 아동 학대다. 신지명 작가는 이 일을 아이 눈으로, 아이 입장에서 다시 바라본다. 아이의 삶은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가족과 분리된 아이의 삶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떨어지려는 공책을 꼭 쥐는 아이의 손길에 그 답이 있다.
나는 공책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어,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공책을 잡았다. 표지를 보았다. 또박또박 적힌 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길냥이 아로의 좌충우돌 세상 모험, 미래의 웹툰 작가, 그리고 내 이름. 나는 공책을 더 꼭 쥐었다. - 본문 24쪽
「무화과나무」에는 집을 떠났으나 꿈에서 자꾸 그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자기처럼 방치되어 있던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며 속은 다 말라붙었을 거라고 말한다. 같이 살던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겨우 다른 이들에 눈에 띄어 집을 떠나 살게 된 아이를 기억하는 동네 이웃들은 그 아이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두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이름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이름이 있으나, 그 이름을 부르는 일이 오히려 미안해지는 아이를 떠올려 본다. 작가는 그저 ‘예쁜 이름이었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뉴스에 수없이 등장하며, 그 이름이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로 기억되는 것이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몸통에서 잘려 나온 무화과나무 가지가 새로운 화분에 심겨져 다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것처럼, 어떤 아이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야 살 수 있다. 그 가족 대신 따뜻하게 품어 줄 튼튼한 화분을 만드는 일, 피해자가 아니라 예쁜 이름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찾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에게 숨을 불어 넣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태풍이 몰아치고 흔들려도 꿋꿋이 자란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애쓰고 있으니
세나와 영우의 이야기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씩씩한 아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별빛 터미널」에서 세나는 엄마가 떠난 이후, 엄마가 모은 그림이 남겨진 창고로 들어가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난감하다. 마침내 창고로 들어가는 방법을 스스로 깨달은 세나는 그 창고가 엄마가 지구에 만든 터미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라는 곳을, 바라는 만큼 갈 수 있는 터미널이 눈앞에 있다면, 세나는 어디로 떠나게 될까?
「지구를 지키는 개 모임」에서 영우는 오래전 집을 떠난 개 타로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타로가 지구를 지키는 개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구에 위기 상황이 곧 닥치는데 영우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거다. 잘하는 것도 없고 뭘 하든 답답하기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영우는 타로의 말처럼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을 믿어 주는 타로를 생각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맡은 일을 해 내려는 영우를 힘껏 응원하게 된다.
서미와 한섭이 이야기에는 자신이 처한 아픈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길로 나아가려는 단단한 마음이 담겨 있다. 언니와 엄마를 생각하며 한 뼘 더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감자콕콕」은 언니가 좋아했던 과자 ‘감자콕콕’을 구하려는 동생 서미의 분투기다. 감자콕콕을 구하기 위해, 온 동네 슈퍼마켓과 편의점을 찾아다니고, 과자 회사에까지 연락해 보지만 실패한다. 그러다 중고 거래 앱에서 서미처럼 감자콕콕을 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감자콕콕을 구하면 해결이 될까? 그리운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의 노래」는 랩 하는 엄마를 둔 한섭이 이야기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한국어 랩을 열심히 하는 엄마를 보며 한섭이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 베트남 출신 엄마와 한국 할머니 사이에서 한섭이는 엄마의 노래에 담긴 진짜 마음을 알게 된다.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한섭이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이야기들을 묶어 내며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뜰한 마음을 건네자는 것. 온 세상이 아이를 환대하고 살뜰한 마음으로 보살필 때, 아이는 스스로를 믿으며 자랄 수 있다. 이 당연한 말이 어려운 세상이라, 이 여섯 편의 이야기는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