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반을 일하는데,
나머지 반만 진짜 인생일까?
일과 삶, 둘을 하나로 합친 사람들의 인생토크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버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이 행운을 얻지 못한 대부분의 우리는 일과 삶을 똑 분리해서, 일하지 않는 시간만 진짜 인생이라는 이분법을 쉽게 가정하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잘하게 되기도 하고(81쪽), 좋아하는 일이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후회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괴롭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일을 좋아하고 있다고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339쪽) 그런 진심어린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직업에 명예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제목 ‘하루의 반을 일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의 배경은 프롤로그에 소개된다. 어느 날 저자 이은경 피디는 친구에게, ‘요즘 누가 일을 재미로 하냐’는 핀잔을 듣는다. 하루의 반을 일하지만, 인생의 재미는 나머지 반에서 찾으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이은경 피디 자신을 포함해, 함께 일하는 팀, 그리고 채진아 작가와 함께 찾아낸 출연진들은 다르다는 것을 콘텐츠에 이어 이 책이 증명해낸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 인생과 하루를 반쪽씩 나누지 않고, 하루를, 하나의 인생을 온전히 사랑하며, 삶 안에 일을 진심으로 녹여낸다.
‘다시 태어나도, 경호원을 할 거’라고 말하는 황수현 서울 중앙지법 형사팀 경호원, ‘꼭 이기지 않아도 재밌다. 그냥 유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김성연 전 유도 국가대표 선수,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기가 쉬운 건 아니니 복 받은 거다’라고 말하는 김경애 스턴트 배우, ‘여성으로서 깰 수 없는 곳을 향해서 계속 가는 게 멋있다’고 말하는 하슬기 스턴트 배우, 그저 바다가 좋고, 경찰이 되고 싶어서 둘을 합친 해양경찰에 지원한 김혜리 인천 해양경찰서 경장 등. 〈사이렌〉의 출연진은 흙투성이 모습에서 벗어나 각자의 제복을 입고 책 《하루에 반을 일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에 다시 모인다. 그리고 자신에 일에 있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다운 역할을 찾아내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직업인들의 정직함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인터뷰를 담았다.
경찰, 경호, 군인, 소방, 스턴트, 운동
‘제가 몸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중요한 것은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
책에는 방송 못지않은 생생한 명대사들이 가득하다. ‘몸 쓰는 일’을 선택해, 단순한 원칙을 세우고, 요령을 피우지 않는 사람들의 강직함이다. 또 책에는 방송 콘텐츠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직업 현장 에피소드와 출연자들의 인생 비하인드 스토리, 일하는 모습과 어린 시절의 사진이 함께 소개된다.
“민원인들이 이래서 경호하겠어?” 하고 놀리면 팔이랑 등 근육을 보여준다는 이지현 경호원, 자살하려고 했던 시각 장애인을 극적으로 구하고 ‘경찰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던 경찰 김해영 순경, 나 홀로 소송 온 사람들을 안내하기 위해 기본 법 지식을 익히는 이은진 경호원, 화재 출동·심정지 출동 이후, ‘내가 늦게 가서 죽었나’ 곰곰이 생각하는 정민선 소방관,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찬다는 임현지 소방관, 여성 경찰 최초로 마약사범을 잡은 이슬 경사, 여고 시절 자주 출몰한 변태 잡으려고 운동을 배우기 시작한 군인팀 강은미 등.
이들의 인생관과 직업관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다양한 타협 지점도 있지만 정직해지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좋아하는 일’에는 고충도 따른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싫어질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때도 온다. 하지만 ‘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했고, 그때마다 늘 극복했기 때문에 새로운 일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군인팀의 이현선님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인터뷰에는 ‘한계에 도전하는 태도’도 자주 언급된다. ‘안 되는 것도 있겠지만 아직 안 해봤을 뿐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운동팀 김희정 카바디 국가대표의 말은 그래서 여운이 남는다. 우승을 두고 겨뤘던 방송에서의 기싸움과 분투, 도파민 터지는 엔터테인먼트는 끝났지만 자신의 직업으로 돌아온 이들의 묵직한 하루하루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래서 이들의 하루는 반반씩, 즉 일과 삶 둘로 나눠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