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평]
영화가 던지는 충격이 매체 특수적이기는 해도 동시에 매체 차원을 넘어서는 몸과 사유와 정치의 마주침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 유의한다면, 이 책은 해외 이론의 일시적 유행을 가로질러 그 핵심을 한국적 상황 속에서 변용하고 갱신하는 ‘K-영화철학’의 한 범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명예교수). 「발문 들뢰즈 영화철학 수용의 산파, 박성수의 영화미학에 대한 오마주」에서
들뢰즈 영화 철학의 지식 전달을 넘어, ‘들뢰즈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봤을까’를 생각하는 태도를 요청한다. 들뢰즈를 지식 전달의 교사로 남겨놓는 대신, 끊임없이 변해가는 기호의 바다에서 ‘나와 함께’ 수영하는 교사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 실제 이 책은 들뢰즈 영화 철학을 영화 이미지 분석만이 아니라, 디지털 영상과 애니메이션 연구로 적용하며 독자들을 새로운 맥락 속으로 끌어넣는다.
- 이지훈(필로 아트랩 대표). 해제 「‘영화 철학’, 사유의 실천」에서
[편집자의 말]
갈증과 열정의 시절, 우리 곁에 박성수의 글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영화를 진지한 시각으로 보려는 관객들이 늘어났고, 철학과 미학을 영화보기에 접목하려는 실천이 왕성해졌다. 대학에서는 철학과가 개설한 영화 강의가 만원을 이루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예술영화도 만석이었다. 우리는 더 다양한 영화, 이론, 비평을 원했다. 그 시기 박성수 선생님의 글은 영화, 철학과 미학에 관한 신선한 소개였으며 다소 어려운 숙제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저서들은 들뢰즈에게 다가가는 훌륭한 길잡이였다.
1958년 창립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이하 ‘부산영평’)가 비평 활동을 활발하게 시작한 때도 바로 이즈음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부산영평은 부산영평상 시상식, 비평서 「영상문화」 발간, 영화 심포지움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던 시기다. 박성수 선생님도 부산에서 활동했기에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그는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부산영평의 협회장을 맡아 협회의 활동들을 주도했다. 당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이론적 주제를 항상 앞서서 소개하고 이슈가 되었던 영화를 둘러싼 담론을 제안했다. 고딕 양식에 대한 방대한 글을 집필하던 중 병환을 얻었다.
이 비평집은 부산영평이 오래전부터 품어 온 작은 염원이기도 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주요 원서가 번역되고 훌륭한 해설서도 많이 출판되었다. 예술철학과 미학은 학문적 유행에서 다소 벗어난 듯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박성수 선생님의 글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영화: 사유의 지도」는 그의 미발표 원고와 여러 지면에 흩어진 원고를 모아 엮은 책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박성수 선생 특유의 문체와 주석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고 싶다던 염원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글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책을 엮으며 가장 고민한 것은 여러 갈래로 전개된 그의 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각 글은 원고의 작성 시기, 출간 여부와 출간 지면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허나, 읽는 이로 하여금 하나의 지도 같은 얼개가 되도록 배치했다. 1부는 들뢰즈와 크라카우어, 리오타르를 관통하는 영상 미학과 그 수용에 관한 글을 모았다. 2부에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유를, 3부에는 유명 작품과 작가에 대한 박성수의 해석을 엮었다. 이 책을 통해 영화미학에 바탕한 비평의 실천을 사유하는 지도이자, 박성수의 사유를 따라가는 지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부산영화평론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