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
- 한 사람의 삶이 들려주는 큰 이야기
한 스님이 있다. 혼외자, ‘빨갱이’ 자식, 소년 빨치산, 유디티 요원, 북파 공작원 교관, 탈영병, 무술 고수, 한국판 강제 노동 수용소 국토건설단 단원, 음독자살 시도, 가명 14개 사용, 역사 관련 연구소 설립,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런 일을 모두 겪은 한 사람이 있다. 원경 스님(1941~2021)이다. 2021년 12월 6일, 원경 스님이 경기도 평택시 만기사에서 입적했다. 2023년 12월 6일, 원경 스님 입적 2주기를 맞아 평전 《한 스님》이 출간됐다.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중요 인물이라 종교학자가 쓴 평전일 법하지만 지은이는 한국 정치를 연구하는 정치학자 손호철(서강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정치학자가 종교인을 다룬 평전을 쓴 이유가 중요하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사이이기도 하지만 원경 스님의 일생이 이념 갈등과 전쟁, 학살 같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한반도의 모순’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경 스님의 속명 박병삼 앞에는 늘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헌영(1900∼1956) 말이다. 손호철은 원경 스님과 모친 정순년이 생전에 한 구술, 현지답사, 인터뷰,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그리움의 족쇄를 끊으려 정처 없이 떠돈 한 영혼’의 80년 삶을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 들려준다. 《한 스님》은 원경 스님과 어머니 정순년이 구술한 회상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다큐멘터리’이지만 생생함을 더하려 대화를 집어넣어 소설 형식을 띠며, 가계도와 연대기, 주요 등장인물 해설 등을 부록으로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한 사람
- 한 정치학자가 쓴 박헌영 아들 원경 스님 평전
한 사람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벌이다 감옥에서 나온 조선공산당 최고 지도자 박헌영과 박헌영의 ‘아지트 키퍼’가 된 순박한 10대 소녀 사이에서 혼외자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일제 경찰을 피해 지하로 잠행하고 어머니는 친정에 잡혀갔다. 고아처럼 남의 손에 자라다가 해방 뒤 격동하는 좌우 대립 속에서 경찰에 쫓기는 공산당 핵심 간부들하고 비밀 아지트에서 살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먼 친척인 한산 스님 손에 이끌려 머리를 깎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애기 빨치산’이 됐다. 휴전 뒤에도 절에서 지내다 월북한 아버지가 미국 제국주의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사실을 알고 복수를 다짐하며 유디티에 지원해 북파 공작원을 육성하는 특수 부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수계하고 전역한 뒤 2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지만 기구한 신세를 비관해 음독자살을 시도해 14일 만에 살아났다. 승려복을 벗은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자 40 대 1로 싸움을 벌여 18명을 쓰러트리고 경찰에 붙잡혔다. 무호적자로 제주도에서 지내다 박정희 정부가 만든 국토건설단에 끌려가 ‘제주 1100도로’를 건설하는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1970년대 간신히 가호적을 얻지만 10월 유신 직후 군 정보기관에 납치돼 뭇매를 맞으며 박헌영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실토해야 했다. 평생을 바친 불교계에서도 빨갱이 자식이라는 색깔론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박헌영의 아들로 ‘커밍아웃’을 한 뒤에도 가짜 아들이라는 비난에 서글펐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소련에 날아가 비로소 혈육을 만나고 아버지 기일도 확인하더니 박헌영 추모 사업을 끝마친 뒤 홀연히 입적했다.
저자 손호철은 한 사람의 삶에 도저히 다 담을 수 없어 보이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날줄로 삼고 한국 현대사를 씨줄로 엮어 ‘한반도의 저주받은 자’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 평전을 세상에 내놓는다. 사실에 바탕한 객관적 서술을 넘어 가혹한 운명에 굴하지 않는 삶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한,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한 시대
- 정처 없는 한 영혼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
한 영혼이 있다. 한 시대가 드리운 그리움의 족쇄를 끊으려 정처 없이 떠돌다 급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한 사람이다. 저자 손호철은 현대사의 비극이 빚어진 현장을 답사하고 글을 쓰면서 우울증에 시달렸다. 좁은 아지트에 홀로 남은 어린 원경을 휘감은 고립감과 공포에 내처 짓눌린 탓이다. 아버지 박헌영과 아들 박병삼, 곧 원경 스님의 진정한 복권과 뒤늦은 해원을 가로막는 ‘레드 콤플렉스’와 ‘민주주의 백래시’에 발목 잡힌 까닭이다. 《한 스님》은 ‘한 인물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이자 어느 이야기보다 더 극적인 ‘휴먼 드라마’로서 우리에게 퇴행의 한 시대를 건너는 법을 알려준다.